[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58회]
미 PGA투어와 LIV 골프 대립각
출전금지 조치 등 갈등 점입가경
역대 챔피언 예우 계승한 KPGA

사진1 디 오픈 역대 챔피언의 날 /골프다이제스트
디 오픈 역대 챔피언의 날 /골프다이제스트

디 오픈의 전통

제150회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렸다. 첫날 대회장인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의 색깔을 보니 가뭄은 우리에게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다. 6월 말 시작된 이른 장마로 해갈(解渴)된 우리 골프장의 잔디는 파릇파릇해졌는데, 멀리 스코틀랜드 올드 코스의 페어웨이와 그린은 먼지 풀풀 날리는 맨땅과도 같아 보인다.

링크스 코스의 페스큐 잔디는 말라붙어 버린 것 같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기나긴 가뭄도 버텨낼 수 있다. 지금 걱정할 건 잔디가 아니라 이런 단단한 페어웨이와 그린을 상대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특히 이런 코스상태를 처음 경험하는 신인들은 주차장의 맨 바닥 같은 페어웨이에 떨어진 공이 수 십 미터를 구르고 굴러 깊은 벙커로 빠지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한다. 최선을 다해 잘 친 샷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는 걸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링크스 코스에 적응해 가는 첫 단계인 것이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대회 4개 모두를 1930년 한 해에 석권하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골프계의 엄친아 바비 존스도 올드 코스를 처음 경험했던 1921년 디 오픈에서 기권을 했다. 계획한 곳으로 정확하게 공을 쳐서 보내도 최선의 결과를 보장받을 수 없는 링크스의 예측 불가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셋째 날 11번 홀에서 공을 집어 들고 말았다. 하지만 훗날 그는 링크스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 남은 생에서 단 한곳에서만 골프를 쳐야 한다면, 난 올드 코스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코스가 변화무쌍하며 뻔한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링크스에서 시작된 골프의 진정한 정신을 받아들인 바비 존스의 후예들이 지금 바로 그곳, 골프의 고향(Home of Golf)인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를 누비고 있다.

LIV골프에 출전한 필 미켈슨 / STEVEN PASTONTHE ASSOCIATED PRESS
LIV골프에 출전한 필 미켈슨 / STEVEN PASTONTHE ASSOCIATED PRESS

2022년 골프, 전통과 변화의 기로에 서다

요즘처럼 골프에서 전통과 변화라는 화두가 피부에 와 닿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난달 출범한 LIV 골프는 사우디 국부 펀드가 후원하는 ‘쩐의 전쟁’이다. 대회 포맷은 4명 1조, 총 12개 팀, 48명이 개인전과 팀 대항전을 벌인다.

컷오프 없이 3일간 진행되는 대회는 선수들이 18홀 전 홀에서 동시에 경기를 시작하는 ‘샷 건’ 방식을 택했다. 1회 대회 총 상금이 2500만 달러에 달하고, 우승자는 400만 달러를 챙긴다. PGA투어 대회에는 없었던 4인1조 팀 경기까지 우승하면 덤으로 인당 75만 불을 벌게 된다. 상금 규모가 PGA투어의 두 배에 달한다.

‘샷 건’ 플레이 방식은 오전에 플레이한 선수와 오후에 플레이한 선수가 겪게 되는 코스상태와 기상조건의 변수가 없어 더 공정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리고 나흘에서 사흘로 줄어든 대회 일정도 선수들에게는 덜 부담스럽다.

대신 상금은 두 배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고 컷오프 당해 한 푼도 못 건질 일은 없으니, 골프가 직업인 프로선수들의 입장에선 무척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 PGA투어와 LIV 골프와의 대립각이다. PGA투어는 LIV 골프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PGA 투어 대회 참가자격을 박탈하기로 했다. 이는 마치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골프계의 종교전쟁인 것 같다.

이런 극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필 미켈슨,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패트릭 리드, 브라이슨 디셈보 같은 미국 출신 메이저 챔피언들이 LIV 골프 투어에 합류했다. 다행히 그들의 디 오픈 참가 자격은 유지되어 지금 이 순간 올드 코스에서 플레이하고 있지만, 전통을 버리고 변화를 택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곱지만은 않다.

그렉 노먼과 LIV 투어

디 오픈의 주최기관 R&A는 디 오픈의 역대 우승자들을 초청하여 팀경기와 저녁만찬을 하는 월요일 전통행사에 그렉 노먼을 초청하지 않았다. 그렉 노먼은 1986년과 1993년 디 오픈을 우승한 호주 출신 골퍼이자 사업가이다. 그가 초청받지 못한 이유는 ‘전통에 대항한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LIV 골프의 CEO를 맡은 그렉 노먼은 골프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 모두에게 배척당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모험을 택한 배경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월드 투어’라는 골프 리그를 런칭해 PGA투어에 버금가는 대회로 만들고자 했던 그렉 노먼의 야망이 당시에는 허무하게 끝났지만, 그런 그가 막대한 재정지원을 약속한 사우디 국부펀드와 손을 잡은 것이다.

미국 주도의 시장에 변화를 꾀한 그의 의도와 용기는 훗날 역사를 통해 평가받을 것이다. LIV 골프의 미래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들은 이제 막 그들 만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목적이 골프를 단지 돈벌이 수단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부정적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골프가 지금까지 이뤄온 전통 중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긍정적인 노력도 이어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너스K 솔라고CC 한장상 인비테이셔널
아너스K 솔라고CC 한장상 인비테이셔널

아너스K 솔라고CC 한장상 인비테이셔널

금주 화요일 태안에 위치한 솔라고 CC에서 열린 프로암 대회에 참가했었다. 새로 출범한 KPGA 후원그룹인 더 클럽 아너스K와 솔라고 CC에서 후원하는 KPGA 대회의 공식명칭을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전설, 한장상 프로의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1954년 캐디로 일하던 군자리 코스에서 골프에 입문했고, 6년 만에 제3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했다. 그로부터 12년 후 일본 오픈 우승으로 마스터즈 초청장을 받게 된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깡다구 하나로 버텨온 나였지만 그날 오거스타에서는 행색 초라한 후진국 선수일 뿐이었지. 아무리 당당하려 해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어. 넓은 주차장에 수많은 자동차, 넘쳐나는 사람들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어.’

그랬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의 개회식에서 감격에 찬 표정으로 후배 선수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며 장차 후배들이 그가 못다한 마스터즈 우승의 꿈을 이뤄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 후 벌어진 프로암 대회를 2018년 한국 오픈을 우승했던 최민철 프로와 함께했다.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장타와 정교한 아이언 샷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그가 말하는 2018 디 오픈 출전 경험은 카누스티를 여러 번 플레이해 본 내게 너무도 생생했다.

플레이 내내 진지한 모습과 함께 상대를 배려하는 훌륭한 매너와 밝은 표정은 나를 그의 팬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 많은 한국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하고 그도 다시 한번 디 오픈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램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응원한다. 

최민철 프로(왼쪽)와 함께 /오상준
최민철 프로(왼쪽)와 함께 /오상준

전통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전통에는 그 분야를 선구자적으로 개척한 선배들의 노고와 업적이 필요하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뛰어넘으려는 후배들의 존경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디 오픈과 같이 162년에 걸쳐 150회의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전통은 역대 챔피언들을 예우하는 월요일 행사로 시작하는 것이다. 전통을 존중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TV 화면을 통해 김시우 선수가 17번 로드 홀 나카지마 벙커에서 만든 두번째 샷이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6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하고 있는 디 오픈에서 그들이 좋은 성적과 값진 배움을 얻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