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티샷 따라 질주하는 견공
훈련시켜 그린 안 밟는 명석함도

지난달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페탈루마에서 ‘2022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개’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50여년간 이어진 이 대회는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입양을 장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데, 금년 우승견은 ‘해피 페이스’라는 이름의 17살짜리 노견이었다.

그의 주인인 41세 음악가 제네다 베널리는 작년 개를 입양하러 보호소를 방문했을 때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는 노견을 만났다. 이 개는 전 주인의 집에서 학대당하고 방치되어 머리는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었고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입양 당시 건강 상태가 나빠 몇 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사랑과 친절로 보살핀 주인과 함께 지금까지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추억이 있다. 골프장에서 만난 견공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나 반려견이나 어느 나라, 어떤 가정에서 나고 자라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복지수는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한 일생을 보내는 반려견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해 학대당하고 길바닥에 버려지는 불행한 개들도 있다. 그런데 골프가 시작된 영국에는 반려견의 입장을 허용하는 골프장이 있다.

영국의 골프장들 중 평균 15%가 반려견의 출입을 허용한다고 한다. 그 중 타 지역대비 반려견에게 더 우호적인 곳은 스코틀랜드와 런던근교 지역이다. 웬트워스(Wentworth), 서닝데일(Sunningdale),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뮤어필드(Muirfield), 턴베리(Turnberry), 스윈리 포레스트(Swinley Forest)와 같은 세계적인 명문코스들이 반려견의 입장을 환영한다.

박세리와 신지애 선수가 우승한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이 열렸던 서닝데일 GC의 경우는 클럽하우스에 반려견을 위한 특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이 골프장의 회원을 주인으로 두고 있는 반려견의 팔자는 그야말로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프레스트윅GC의 회원과 반려견 /오상준
프레스트윅GC의 회원과 반려견 /오상준

프레스트윅의 영리한 사냥개 

스코틀랜드의 남서쪽 해안 마을 프레스트윅(Prestwick)에선 회원제 클럽이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주민들이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골프를 즐겼다.  이곳에 1851년 올드 톰 모리스가 코스를 설계해 12개 홀을 갖춘 정식 클럽이 만들어졌고 마을의 이름을 따라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이라 명명했다

이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디 오픈 챔피언십이 1860년에 처음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7년 전,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던 어느 이른 봄에 이 유서 깊은 코스를 방문했었다. 170년 전 개장 당시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홀과 그린을 견학하며 책에서만 접했던 클래식 코스의 특별함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을 때였다.

언덕 위에 서서 몰아치는 강풍에 맞서 몸의 중심을 잡고 코스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건너편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린 색 스웨터를 멋지게 차려 입은 초로의 신사 옆으로 초콜릿 빛 윤기가 흐르는 사냥개 한 마리가 미동 하나 없이 서서 페어웨이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주인의 티 샷이 클럽 페이스를 떠나 허공을 가르자마자 이 친구는 마치 먹이를 쫓는 사냥개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러프에 들어간 볼 옆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이 견공을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린 주변에서는 한 술 더 떠 주인이 퍼팅을 하고 있는 동안 그린 밖에서 방해가 안 되도록 점잖게 앉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들은 발바닥의 감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훈련만 잘 시키면 짧게 깎인 그린과 그렇지 않은 페어웨이를 구별하여 그린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캐디의 역할도 할 줄 아는 코스의 동반자 반려견에 감탄했던 그 후로 반려견을 기르게 된다면 초콜릿 색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스윈리 포레스트 그린키퍼의 동반자 /오상준
스윈리 포레스트 그린키퍼의 동반자 /오상준

스윈리 포레스트 코스관리 책임자의 조수

잉글랜드 버크셔에 위치한 스윈리 포레스트 골프클럽은 1909년 설립된 영국의 가장 프라이빗한 클럽으로 영국의 오거스타 내셔널이라 일컬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문클럽이다.

전장 6000야드 정도의 짧지만 아름다운 코스는 영국의 설계자 해리 콜트가 디자인한 전통적인 파크 랜드 스타일의 코스이다. 이곳이 최근까지도 스코어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을 유지하는 이유는 스코어보다는 회원 간의 친목이 주된 목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2인 1조로 스코어를 기입하지 않고 홀 당 승패를 가르는 매치 플레이를 즐긴다.  전동 카트를 타지 않고 골프백을 짊어지거나 수동 카트를 끌고 플레이하며 네 명이 아닌 두 명이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18홀 경기에 걸리는 시간은 두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을 방문한 날, 적벽돌로 지어진 저택들이 즐비한 버크셔의 골목을 헤매어 겨우 찾아낸 골프장은 클럽이름이 새겨진 작은 문패가 식별할 수 있는 표시의 전부였다.

마치 영국 전원의 대저택에 초대받은 듯,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렸을 때 우리를 맞이한 이는 사람이 아닌 코스 관리인이 키우는 개였다.  답사 내내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풍채가 넉넉한 개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날 18홀을 통틀어 공을 치고 있던 이들은 네 명이었고, 텅 빈 것 같은 코스를 돌아보는 내내 코스관리 책임자와 내 곁을 지켰던 그의 반려견은 든든한 동반자였다.

아직까지도 기억속에 한없이 착한 표정을 짓던 그 녀석이 자꾸 눈에 밟힌다.

킹스턴 히스에서 만난 보더콜리 /오상준
킹스턴 히스에서 만난 보더콜리 /오상준

킹스턴 히스 그린 키퍼의 보더콜리

호주 멜버른 근교의 샌드벨트(Sandbelt)에 1925년 건립된 킹스턴 히스(Kingston Heath) 골프클럽은 인근에 위치한 로열 멜버른 골프클럽과 함께 호주 골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진다.

킹스턴 히스는 초창기에 파82 코스로 호주에서 가장 전장이 긴 코스였다.  이후 오거스타 내셔널을 설계한 스코틀랜드의 알리스터 매킨지 박사가 1926년에 초빙되어 대대적인 벙커 개조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파72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킹스턴 히스를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부터 17년 전 영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내가 소속된 설계회사의 클라이언트와 함께 호주 답사를 하던 중이었다. 근교의 로열 멜버른GC의 서코스에서 느꼈던 남성적인 스케일과 전략적 난이도와는 달리 킹스턴 히스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코스의 굴곡이 특징이었다.

당시 코스관리 책임자 마틴 그린우드가 키우던 양치기 강아지인 보더콜리는 나를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대해주었다. 그 초롱초롱하던 눈매와 붙임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릴 적 집에서 키웠던 진돗개는 마당에 살던 집 지키는 개였다. 가끔 함께 놀아 주기도 하고 밥을 챙겨 주기도 했지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가족과 같은 존재의 반려견은 아니었다.

앞으로 내 삶에 반려견과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반려인으로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에 가능할 것이다. 미래에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골프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골프공을 갖고 함께 노는 모습은 상상해 본다.

세계 최초의 메이저 대회, 제150회 디 오픈 챔피언십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주에는 이번 디 오픈이 열리게 될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를 소개하겠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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