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54회]
PGA HOPE 등 재활 프로그램 다수
천안함 군인 환자복 입힌 韓과 대조

골프장 그린에서 퍼팅 중인 미국 재향군인들 /PGA HOPE
골프장 그린에서 퍼팅 중인 미국 재향군인들 /PGA HOPE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두 얼굴

최고의 전쟁영화 목록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1957년), 디어 헌터(1978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플래툰(1986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 덩케르크(2017년), 1917(2019년) 등이 있는데, 이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장터에도 존재하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고 둘째는 전쟁의 후유증을 다룬 영화이다. 후자의 경우는 특히 베트남 전 이후 만들어진 일련의 영화에서 참전 미군들이 겪었던 참혹한 현실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뤘다.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교차되는 전장터에서 불구가 되거나 전우를 잃은 이들,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경험한 이들이 살아 돌아왔을 때 국가와 사회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영화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 그리고 문제를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다.

베트남 전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국지전(局地戰)을 치렀던 미국은 그로 인한 다양한 후유증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전쟁의 승패 여부를 떠나 참전용사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정부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골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 디어 헌터 포스터
영화 디어 헌터 포스터

PGA HOPE 

골프를 통해 재향군인들의 심리적, 육체적 재활을 돕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건 작년 봄에 만난 골프 선생님으로부터였다. 그는 미국 PGA클래스 A 자격증을 갖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미국으로 돌아가 일반인들과 상이(傷痍)군인들에게 골프레슨을 한다고 했다.

전쟁에서 부상을 입거나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시달리는 이들의 재활을 위해 PGA of America에서 PGA HOP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PGA HOPE라는 명칭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골프로 희망(HOPE)을 심어준다는 의미로 이해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그 명칭에는 더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었다.

HOPE는 ‘모든 곳에서 우리의 애국자들을 돕는다 Helping Our Patriots Everywhere’는 문구의 이니셜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전역에 총 38개 지역에서 162개의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고 350명의 레슨 프로들이 25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을 보살피고 있다. 6주에서 8주 기간 동안 골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동료들과 함께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은 무료로 진행된다.

PGA HOPE 프로그램 포스터 /PGA HOPE
PGA HOPE 프로그램 포스터 /PGA HOPE

미국에서 매일 22명의 재향군인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통계수치는 무척 충격적이다. 이런 현실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골프기관인 PGA of America는 그들의 티칭 프로 네트워크를 활용해 골프를 통해 삶에 변화를 주고, 목표를 만들어 주면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서 더 건강한 재향군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PGA of America의 회원이기도 한 잭 니클라우스는 HOPE 프로그램 홍보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할 차례입니다.’

골프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PGA HOPE 프로그램을 경험한 재향군인 윌 스톡홀름의 후기는 다음과 같다. ‘PGA HOPE 프로그램은 퇴역군인들의 웰빙을 위해 안전과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한 도움을 주는 환경이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한 후 사회에 재적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환대와 편안함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갇혀 있었던 암흑에서 날 구해준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종사한 PGA 회원들이었다.  골프를 통해 삶이 던지는 다양한 도전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함께 참가한 동료들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를 얻었다.  이는 마치 신선한 공기를 충전 받고 다시금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얻은 느낌이었다.’

미국 재향군인들이 골프행사를 가진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피지에이임팩트
미국 재향군인들이 골프행사를 가진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피지에이임팩트

우리나라는 다양한 국지전에 지속적으로 군대를 보내고 있는 미국과는 다른 환경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 상태. 그 동안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중 전시에 버금갔던 상황을 들자면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폭침사건이 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천암함 폭침사건에서 생존한 58명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사건 직후 기자회견 때 환자복을 걸치고 나왔던 생존자들의 모습은 아직도 처연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런 취급을 받았을까?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김승섭 교수는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천암함에서 생존한 장병들이 폭침 사건 후 겪은 10여 년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생존 장병들에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생긴 고통에 국가와 사회가 모두 등 돌렸다는 사실이 가장 큰 상처였다. 그들이 제대한 뒤에는 상이연금의 존재도 고지 받지 못해 고통을 참거나 자비로 병원에 가야했다.’ ‘생존자가 삶의 통제권을 회복하고 충분한 안정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말하게 하거나 떠올리도록 하는 것은 증상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인데, 당시 생존자들은 진료실에서도 피의자처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사건이 있으면 배움이 있어야 한다. 배움이 없으면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되고 그런 사회는 한발짝도 발전할 수 없다.

굳이 골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골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시작된 HOPE 프로그램이 우리땅에 꽃을 피울 수는 없을까? 만에 하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골프를 통해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대한민국이 골프 선진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