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53회]
골프를 통해 배우는 삶의 매니지먼트
볼마크 수리 에티켓 찾기 어려운 한국
미국선 어릴때부터 퍼스트티 가르쳐

최근 신문기사에 숙박시설을 이용한 고객들이 방에 남기고 간 흔적들로 고생하는 업주에 대한 얘기가 여러 번 나왔다. 펜션 이용객들이 기물을 깨끗이 쓰고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떠난 경우들이다.

내가 있었던 자리를 떠나기 전 되돌아보고 나중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골프의 기본 에티켓이다. 여기에는 티잉 그라운드에서 부러진 티를 수거하는 것, 페어웨이 디봇을 떨어진 잔디로 채워 넣거나 모래로 다지는 것, 벙커 안 발자국을 정리하는 것, 그린 위 볼 마크를 수리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볼마크 수리하는 법 / 출처 USGA
볼마크 수리하는 법 / 출처 USGA

골프에 갓 입문한 초보자들은 의아할 수 있다. ‘공 치기도 바쁜데 그 많은 일을 다 챙겨야 한다고?’ 그런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골프의 제1 원칙이 ‘Play as it lies.’ 즉 ‘공이 놓여 있는 그대로 플레이하라’이기 때문이다.

룰이 정하는 특별한 예외상황을 제외하고는 내게 불리한 위치에 공이 놓여 있더라도 옮기지 말고 그대로 플레이 해야 한다. 그래서 나 보다 앞서 공을 친 사람이 뒷정리를 안 했을 때, 그 손해는 고스란히 뒤따르는 사람들이 감내해야 한다.  내가 이런 귀찮은 일들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이유는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에티켓은 골프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제일 먼저 전수해야 하는 지식이다.  어쩌면 멀리 정확하게 공을 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일 수 있다. 마치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예의범절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하지만 요즘 골프장에선 이런 기본예절을 지키는 골퍼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누군가 대신해 주길 바라고, 그게 내가 낸 이용료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펜션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이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낸 숙박료에 내 ‘무지(無知)의 소치(所致)’에 대한 복구비용이 들어 있다고 믿는 당당함.

그런데 스타일리시하고 멋진 골퍼가 되기 위해선 패션과 골프실력에 앞서 예의범절이 우선이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최고급 레스토랑에 갔는데, 테이블 매너를 미처 갖추지 못해 본인도 당황하고 동석한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골프장에서 페어웨이 디봇을 복구하고 볼마크를 올바른 방법으로 수리하고 있는 골퍼를 목격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 저런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즐거울까?’ ‘저 사람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얼마나 행복할까?’

1997년 미국에서 설립된 ‘First Tee 퍼스트 티’ 프로그램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골프를 통해 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퍼스트티
1997년 미국에서 설립된 ‘First Tee 퍼스트 티’ 프로그램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골프를 통해 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퍼스트티

미국의 ‘퍼스트 티’ 프로그램

집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골프를 통해 전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1997년 미국에서 설립된 ‘First Tee 퍼스트 티’ 프로그램이다. PGA투어, LPGA, 오거스타 내셔널, PGA of America, USGA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골프기관이 합심하여 만든 ‘퍼스트 티’는 설립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가 명예회장이 되어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창단식을 올렸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인성교육이 골프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어린이들에게 골프를 통해 올바른 인격을 가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감을 심어 줘서 그 영향이 평생토록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교실에서 책으로 전할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잔디밭 위에서 골프를 통해 이뤄보겠다는 그들의 계획은 25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 총 150개의 지부(支部)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만 7세에서 18세 사이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퍼스트 티’는 골프를 통해 정신력(Inner strength), 자신감(Self-confidence), 회복력(resilience)을 심도록 돕는다. 그 결과 그들이 앞으로 인생에서 부딪히게 될 환경, 예를 들면 친구와의 관계, 초·중·고등학교, 대학, 직장에서 일어나게 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내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법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법
단계별 목표를 세우는 법
미래를 계획하는 법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
골프의 기본 기술과 테크닉을 익히는 법

어른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행복의 비법을 골프를 통해서 배울 수 있게 한 그들의 골프문화가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퍼스트 티’ 프로그램은 국내에도 있다. 2015년 프레지던츠 컵이 개최된 이후 국내에 설립되었고, 그 동안 많은 어려움, 특히 사교육에 매몰된 청소년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인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 많은 열혈골퍼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골프를 통해 삶의 가치를 찾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해본다.

퍼스트티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년소녀들.
퍼스트티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년소녀들.

어느 펜션 주인의 기발한 아이디어

도대체 가르치려 드는 걸 싫어하고 잘못을 지적하면 꼰대라 치부하는 요즘 세상에서 뭔가를 개선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잔소리 대신 상을 주면 행동의 변화가 생길까?

펜션관련 기사의 말미에 실린 댓글까지 읽어보았다. 그런데 댓글 중 하나에 기발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 전직 펜션 주인의 경험이 쓰여 있었다. ‘청소하고 분리 수거 잘하면 퇴실 시 숙박요금의 10% 환불해준다’고 하면 뒷정리가 완벽하게 됐다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이 있었을 때 에티켓도 지켜지는 현실을 보면 좀 씁쓸하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차로 정지선 지키기 캠페인이 있었다. 신호등 앞 건널목 공간을 자동차가 침범하지 않고 정지선 직전에 멈춰 서면 냉장고를 선물하는 TV 프로그램이었다.

34년이 흐른 지금, 운전 문화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골퍼들의 에티켓은 어떤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가?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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