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의 일상다반사]
발에 차이는 나뭇잎과 시든 꽃잎도
자연에서 받는 위로와 일상의 기쁨

​일상의 위로가 되어주는 반려식물, 선인장 /그림=홍미옥, 갤럭시노트20​
​일상의 위로가 되어주는 반려식물, 선인장 /그림=홍미옥, 갤럭시노트20​

매번 하는 말이지만 우리 집은 화초를 키우기에 적당한 환경이 아닌가보다. 물론 이것은 '화분 죽이기'라는 무서운 특기(?)를 가진 자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봄, 화분을 가득 실은 꽃 트럭에서 수국 화분 하나를 구입했다. 이번에도 어차피 실패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웬걸? 예상을 깨고 보랏빛 수국은 탐스럽게 꽃을 피웠다.

거짓말 좀 보태서 달덩이만 한 크기의 수국 한 송이가 가져다준 행복은 두고두고 날 기쁘게 했다. 그랬던 수국 화분이 겨울을 지나더니 영 꽃 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위 잎사귀만 무성한 깻잎 수국이 되어 매일 아침 날 실망시키고 있다.

차라리 깻잎이었다면 이모저모로 쓰임이 있을 텐데···

급기야 넌 왜 그러니, 다른 집 수국들은 잘만 피던데··· 등등, 마치 자녀를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수준의 투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가시위에 핀 꽃

그러던 어느 날 장난삼아 화분 위에 던져놓은 아보카도 씨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야무지게 단단해서 빈 화분에 쏙 심은 것뿐인데···.

무심코 던진 아보카도에서 잎이 자라고 있다. /사진=홍미옥
무심코 던진 아보카도에서 잎이 자라고 있다. /사진=홍미옥

그날부터 나의 관심은 수국 대신 아보카도 화분으로 향했다. 그래, 물, 더 줄까? 너 참 기특하다 등등. 식물과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내가 나도 우습다.

어릴 적 당시로는 귀했던 선인장 화분이 있었다. 어느 해 선인장이 꽃을 피우던 날, 말 그대로 우리 집은 난리가 났다. 무슨 잔치라도 난 마냥 부모님은 이웃들과 선인장꽃을 자랑하고 또 그걸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게 뭐라고 그런담? 선인장의 뾰쪽한 가시에 몇 번 찔려본 나로서는 이상할 따름이었다. 식물이, 꽃이 주는 위로를 알 리가 없던 어린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선인장꽃이 피고 질 때까지 집안 분위기는 내내 부드러웠다.

사람들은 그렇게 혹은 일방적일지라도 자연과의 대화에서 위로와 평안함을 느끼는 경우는 많고 많다.

자연의 숲에서 찾는 기쁨놀이

거창하게 활짝 핀 꽃이나 나무에서 위로나 치유 같은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자연과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요즘 화제인 『할미의 숲마실』의 저자 전명옥 작가는 그저 숲길에 떨어진 나뭇잎과 열매, 부러진 나뭇가지 등으로 너무도 쉽게 그걸 해내고 있다.

​할머니의 숲일기 /사진=전명옥​
​할머니의 숲일기 /사진=전명옥​

뒷동산 산책길에서 어린 손녀들과 하는 식물 소꿉놀이랄까? 신선했다.

발길에 차이거나 청소부의 빗질에 담겨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것들이 놀이로 태어나니 재밌기만 하다.

놀이터에서도 아이들 노는 걸 보기 힘든 세상이고 보니 숲에서 자연 놀이를 하는 책 속의 두 꼬마 아가씨가 부러울 정도였다.

책을 읽고 있으니 사계절 숲에서 쫑알거리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즐거워진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릴 적에 노란 은행잎 단풍잎 토끼풀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토끼풀 반지를 낀 손을 보며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아도 제법 비싼 열매가 열리지 않아도 싹을 틔워준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일이다.

나뭇잎 화관을 쓴 자화상 /사진=전명옥
나뭇잎 화관을 쓴 자화상 /사진=전명옥

일상의 작은 위로나 활력소가 되어주는 그것, 알고 보니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깻잎 수국이나 언감생심 열매는 기대할 것도 없는 아보카도 화분. 그래! 내 일상의 위로는 바로 가까이 있는 식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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