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본 세상]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뉴트로' 유행
코로나 이후 턴테이블·LP 매출 증가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최승아 씨가 필름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 최씨는 디지털이 담지 못한 감성이 있다고 했다. /최승아
최승아 씨가 필름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 최씨는 디지털이 담지 못한 감성이 있다고 했다. /최승아

“필름 카메라는 현상하는 순간에 결국 누군가와 만나게 되고, 다시 사진을 찍으려면 필름을 구매해야 하고, 한 번 사진 찍을 때마다 필름을 감아줘야 하죠. 생각해 보면 번거롭고 비효율적인데 그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국민대 사회학 전공 1학년 최승아 씨(여‧20)는 필름 카메라에 빠져있다. 최씨는 우연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필름 카메라에 대해 알게 됐고 흥미를 느낀 뒤 생애 첫 필름 카메라를 구매했다. 그는 “첫 롤을 현상한 후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씨가 아날로그 취미에 빠지게 된 건 또래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아날로그 자체를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소위 'MZ세대'이다.

그는 “나중에 현상했을 때 사진을 보면 되게 재밌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이상하게 찍힌 사진도 있고, 빛 조절을 잘못해서 아무것도 안 나온 사진도 있다. 친구들이 자기도 찍어보겠다고 찍다가 렌즈에 손가락이 다 나온 적도 있다. 현상한 사진들을 보면 그 순간순간에 또 하나의 감정과 생각, 추억이 생겨난다”라며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똑같은 일상 속의 한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서 필름 카메라를 추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대의 ‘아날로그 감수성’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라 불리며 디지털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 사이에서 최근 다이어리 꾸미기, 필름 카메라, LP, 자수, 공예, 필사 같은 아날로그 취미들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많은 20대들은 “이미 일상의 많은 부분을 디지털이 차지하고 있어 취미까지 디지털화하기 싫다”라고 말한다.

조사연구 기업 엠브레인에서 전국의 만 19세~59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2021년 ‘아날로그’ 감수성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대가 50.8%로 아날로그 상품에 관심을 가장 많이 갖는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한 20대가 ‘디지털 감성’보다 ‘아날로그 감성’을 더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손준형 씨가 가진 LP 턴테이블. /손준형
손준형 씨가 가진 LP 턴테이블. /손준형

국민대에 재학 중인 2학년 손준형 씨(남‧21)는 진공관 앰프와 턴테이블을 통해 LP를 듣는 취미를 갖고 있다. 손씨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해당 취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LP에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은 바로 음악을 보고 만지며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LP는 저마다 이색적 아트워크와 표지가 있고,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이 아주 매력적이다. 특히 요즘은 기존의 검은색으로만 이뤄진 ‘블랙판’과는 달리 시각적인 매력을 중요시하는 ‘컬러판’도 많이 나오고 있어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손씨는 LP로 음악을 들으며 심리적으로 편안한 안정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LP의 음향에 대해 “너무 깨끗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디지털 음원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감성적으로 크게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K대 사회과학계열 재학생 이모 씨(여‧23)는 다이어리 꾸미기와 필사 취미를 갖고 있다. 이씨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하루하루를 구분 짓기 위해 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하게 됐다. 또한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책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곱씹고 싶어서 필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씨는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워낙 많이 사용하니까 인터넷 세상 속 줄임말, 은어, 밈 같은 표현을 평상시에 많이 쓰게 된다. 웃기고 재밌기는 하지만 말투가 살짝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정도는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무게감이 있다고 생각해서 필사를 꾸준히 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은 아날로그 취미를 즐기지만 과거 디지털 취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온종일 스마트폰 액정이나 태블릿 PC의 액정, 컴퓨터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와서는 또 취미생활을 한답시고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취미생활 영역은 웬만하면 아날로그로 남겨두고 싶다”라고 말했다.

과거엔 투박하지만 모두가 아날로그였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아날로그 문화에 관심을 두고 관련 취미를 갖게 됐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 간 소통이 단절되고 집에 각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아날로그 취미 문화 확산에 유일한 원인일 수는 없으나 확산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는 것이다.

경기도 G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모 씨(여‧22)는 복고풍의 액세서리를 만드는 비즈 공예 취미를 가지고 있다. 정씨는 “코로나19 이후에 아날로그였던 과거를 더 그리워하게 됐다”라며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 단절되다 보니까 예전의 추억들을 꺼내 보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 예전에 유행했던 것들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날로그 취미인 턴테이블과 LP 판매량 모두 코로나19 이후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서 올해 상반기 턴테이블 매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30% 증가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전년 대비 LP 판매량은 2018년 26.8%, 2019년 24% 늘었다가 지난해 73.1% 뛰었다.

황수민 씨가 새긴 자수. /황수민
황수민 씨가 새긴 자수. /황수민

서울 M대학 중어중문학과 2학년 윤모 씨(여‧21)는 필름 카메라 촬영이 취미다. 윤씨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늘었다. 윤씨는 “그렇게 추억 회상을 하다 보면 당연히 코로나19 전만이 아닌 한참의 과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럼 그때의 아날로그적 느낌과 감성을 그리워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아날로그 문화

예전에 유행했던 아날로그 문화가 재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아날로그 취미가 주류 문화였던 시대에서 약 20년이 지난 지금, ‘New-tro(신복고)’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돌아오고 있다. 아날로그 취미를 즐기는 20대들은 지금의 문화도 10년, 20년 후에 다시 유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 경영학 전공 2학년에 재학 중인 황수민 씨(여‧20)는 꾸준히 자수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황씨는 패션 경향이 돌고 도는 것처럼 현재 취미 문화도 다시 유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디지털이나 아날로그나 상관없이 우리가 지금 즐기는 취미 모든 것이 돌아올 것 같다”라며 “언젠가 다시 슬라임 열풍이 불 것으로 생각한다. 슬라임이 원래 초등학생 때 유행하던 액체 괴물이 다시 유행으로 돌아온 거다”라고 말했다. 슬라임은 찰흙, 물풀, 소다 등으로 만드는 끈적하고 단단하며 흐름성이 적은 시판 장난감을 말한다. 질감에 따라 클리어 슬라임, 버터 슬라임, 셔벗 슬라임 등으로 불린다.

서울 S대학에 재학 중인 4학년 김모 씨(여‧25)는 “현재 유행하는 인생네컷 같은 사진 부스도 나중에 다시 유행하게 될 것 같고, MBTI 같은 심리 테스트도 다시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예전에 혈액형별 성격 테스트 이런 게 많았다. 재미로 보는 심리 테스트 책도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20대들이 MBTI, 심리 테스트 같은 문화를 가장 잘 즐기고 있는 세대니까, 20년 후에 이들이 다시 심리 테스트를 해보며 젊었던 때를 추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영향이 20년 후의 20대에게도 미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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