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박현숙, 광주 ‘소녀회’ 활동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박현숙 朴賢淑 (1914~1981)
운동계열 : 학생운동 | 훈격(서훈년도) : 애족장(1990)
박현숙 선생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1929년 5월에 장매성(張梅性)의 권유로 항일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1928년 11월 장매성의 주도로 광주여고보생 6명이 조직한 항일학생결사 단체로 조국의 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했다. 매월 월례연구회를 갖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1929년 6월 광주학생의 조직적 활동을 위해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긴밀한 연락을 맺으며 활동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 때에는 소녀회가 앞장서서 가두시위를 했으며, 다친 부상 학생을 치료하거나 식수 공급, 돌멩이를 날라다 주는 등 가두시위를 도왔다.
소녀회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선생은 1930년 1월 15일에 피체되었으며 그해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언도받았다.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신 문경록 선생입니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후손된 도리를 다하고 싶어서였어요. 박현숙 선생의 초상화는 흐릿한 사진으로만 남은 선생의 얼굴처럼, 짙은 색을 사용해서 음영이 드러나게 그렸습니다. 어두운 색이 주는 깊이감과 무게감이 그녀의 올곧은 정신과 신념에 찬 애국심을 두드러지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문복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