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채의 미학

판소리 명창 박동진(1916-2003) 선생의 소리를 육성으로 직접 들은 것은 90년대 초, 내가 경남 진주에서 공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진주 시내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판소리 공연를 하러 내려 왔다. 당시는 판소리가 인기를 잃고 대중의 관심에서 많이 사라졌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선생이 모 제약회사에서 나온 우황청심환 CF에 출연한 것이 크게 히트치면서 판소리가 명맥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광고의 내용은 흥보가에서 놀부가 흥부의 부자 된 사연을 듣고 흥부처럼 다친 제비를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제비를 잡아 다리를 분지르기 위해 출동하는 대목이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로 시작하여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로 끝나는 CF였다. 그 광고는 당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수십년 전의 일이라 그날 공연에서 선생이 구체적으로 어떤 곡을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적벽가, 수궁가 등 여러 곡 중에서 널리 알져진 부분들을 모아 갈라 형식으로 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란색 비단 두루마기에 부채를 들고 열정적으로 소리를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전통적으로 소리꾼들은 부채를 공연 분위기를 북돋우는데 활용한다. 고음, 저음 모두에 강한 박동진 선생의 부채 운용은 더욱 특별했다. 소리를 하는 중간에 허공을 가르키기도 하고 관중석을 가르키기도 하던 부채는 어느 순간 선생의 목청이 높아지면 착~ 소리를 내며 활짝 펴졌다.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드는 대목에서는 부채도 서서히 접히는 등 소리와 부채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명창이라도 고수가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고수의 역할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그때 박동진 명창을 따라 공연을 같이 왔던 분이 유명한 고수 주봉신(1934-2017)선생이다. 90년대 초 막 결혼한 20대 후반의 젊은이였던 나는 수줍어서 박동진 명창이든, 주봉신 고수든 선생들께 다가가 인사말 한 번도 못 드릴 정도로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즈음,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근무하고 있었고, 장관을 모시고 전주에 내려갔다가 주봉신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진주 공연의 추억을 말씀드렸고, 8순을 바라보던 명고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박동진 명창과 함께 전국을 누비고 해외 공연을 다니던 ‘일고수이명창’의 화려한 시절, 박동진과 주봉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듣고있던 나마저도 행복했다. 명창과 명고수,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부채가 한중일 동양 3국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몰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온 생활 도구였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중국이나 일본의 산수화는 물론이고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같은 화가들의 우리 민속화에도 수없이 많은 부채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보물 제527호 지정된 단원풍속도첩에 실려있는 김홍도(1745-1806?)의 그림 ‘씨름’에는 부채를 들고 있는 양반 구경꾼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부채는 생활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부채의 8가지 덕을 가리켜 ‘부채 팔덕(八徳)’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먼저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고, 둘째 햇빛을 막거나, 셋째 비를 막기도 한다. 넷째 파리나 모기를 쫓기도 한다. 다섯 째 방석으로 사용하거나, 여섯째 밥상으로도 사용한다. 일곱 째 머리에 이고 물건을 나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리는 차면(遮面)의 용도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방석이나 밥상으로 쓰인다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황당한 용도도 있다. 마지막은 암행어사가 출도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부채 팔덕에는 없지만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고 먼지를 날리듯이 부정하고 삿된 기운을 몰아낸다는 벽사(辟邪)의 상징 때문에 옛날 무당들이 굿을 할 때는 부채는 필수적인 도구[巫具]였다. 물론 귀신을 불러내는 역할[招神]도 겸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결혼식날에 쓰이는 부채의 상징이다. 옛날 신랑은 장가가는 날 말을 타고 처가로 가는데, 말에서 내릴 때 파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신부는 신부대로 초례청으로 나올 때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이것은 처녀 총각인 신랑신부가 만나 부채를 거둠으로써 서로 동정(童貞)을 주고 받는다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서양인들이 부채를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은 쉽지않다. 다만 스페인에서 새빨간 부채를 들고 노래하며 플라멩코 춤을 추는 무희들의 공연을 본 적은 있다. 노래와 춤과 반주가 혼연일체가 된 흥겹고 신나는 열정적인 춤사위에는 늙은 집시 여인의 짙은 주름살과 함께 그들의 고단한 삶과 명멸해가는 플라멩코 전통의 애잔함이 배여나는 듯해서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난다.
민속화가인 단원이나 혜원처럼 프랑스 근대 민중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 그의 ‘발레수업’이라는 그림에도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감독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보인다. 정확한 데생, 풍부한 색감으로 유명한 드가는 검은 머리에 빨간장미 모양의 머리핀을 꽂은 발레리나가 역시 검은 색감을 주조로 테두리만 빨간색으로 칠해 액센트를 준 부채를 든 발레리나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 선비들은 주위 친한 벗들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지로 만든 하얀 부채[白扇]에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나 그림을 직접 써거나 그려 넣어서 우정을 표현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자신이 만든 부채를 자신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도 얼마전까지 잘쓰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대충 부채에 붓으로 쓰고는 기름을 먹여 들고 다녔다. 아쉽게도 실수로 부챗살이 부러지는 바람에 부득불 버리게 되었지만, 남들에겐 하찮아 보이는 그냥 부채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얼마나 애착이 가는 소지품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엊그제 서재를 정리하다가 여러 해 전 당시 직장 후배가 내게 선물해 준 부채가 눈에 띄었다. 기존에 써던 부채가 있어 바로 사용하지 않고 보관해 둔 것이 이번에 발견된 것이다. 칼리그라피를 하는 후배는 내가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을 흠모하는 것을 알고는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에 나온 한 구절을 부채에 써서 주었다. 나는 융을 워낙 존경하여 아들의 이름도 융이라고 지을 정도였다.
그 부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꼽혔지만 융의 통찰의 세계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적 본능과 공격적 본능과 같은 환원주의의 틀 안에서 규정될 수 없다. 융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이드-에고-수퍼에고와 같은 개인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훨씬 뛰어넘는, 유사 이전부터 있었던 인간 근원에 대한 탐구와 통찰로 가득차 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라는 말 역시 무의식을 강조하는 융의 사상 핵심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개인적인 의식의 중심인 자아(ego)에 갇혀 있지 말고,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우리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는 마음 속의 절대자와 같은 본연의 자기(self)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제대로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융은 그의 책 곳곳에서 무척 강조한다.
부채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열길로 많이 샜다. 요몇년 사이에 부채 대신 미니 전동 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초기에는 어린 여학생이나 젊은 여성들이 주로 들고 다니더니, 이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채 대신 전동 선풍기를 들고 다닌다.
손으로 부지런히 부쳐야 바람이 이는 부채보다, 가만히 있기만 하는 전동 선풍기가 효율적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충전할 필요가 없어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소리는 시대를 모르는 꼰대로 몰릴까봐 20대인 내 아들, 딸에게조차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더구나 어지간한 장소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돌아가기 때문에 부채가 그다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름의 유용한 상징과 품격까지 갖춘 부채. 더운 여름날 길을 걸을 때 모자나 썬글래스를 대신하여 땡볕도 막아주어 눈부심도 막아주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도 보호해주는 실용적인 역할까지 갖춘 부채. 그 부채가 휴대용 선풍기에 밀리는 것은 아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얼마전 대학 후배를 만났더니 학교에서 만든 작은 부채를 선물해 주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나마 부채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은 늘 백우선(白羽扇)이라는 새의 흰 깃털로 만든 큰 부채를 들고 삼군을 지휘했다.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큐피드에게는 사랑을 상징하는 활과 화살이 꼭 따라 붙는다. 수태고지를 하는 마리에게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이 함께 한다. 이런 것은 서양미술사가들은 상징(symbol)과 구별하여, 소지품이라는 뜻을 까진 어트리뷰트(attribute), 즉 지물(持物)이라고 한다. 제갈량에게는 하얀 깃털 부채가 그의 지물인 셈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은 인간의 피부를 시원하게 한다. 그러나 부채는 피부보다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참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번 여름에 여러분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그런 부채말고,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부채를 당신의 어트리뷰트로 삼으시기를 조심스레 그러나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이 부채가 우리 주변을 떠도는 모든 삿된 기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지긋지긋한 장마와 무더위 모두모두 끌고 가버렸으면 좋겠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