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視線)의 심리학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초중고나 대학을 막론하고 영상수업에 화상토론까지 진행되는 등 비대면, 비접촉의 시절이 지속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를 해야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가 사람들의 대면접촉을 막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가중되고 있다.  

가수 유승범이 부른 노래 ‘질투’(1992)의 전반부는 이렇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아

그저 사랑의 눈빛이 필요 할 뿐이야

나의 마음 전하려 해도

너의 눈동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잖아

2013년에 개봉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SF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이 노래는 최진실이 주연했던 드라마 ‘질투’(1994)의 주제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의 눈이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 한 번 유심히 살펴보라.

그의 눈동자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제나 어딘가 다른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면 그냥 ‘멍 때리기‘를 하고 있다.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대개 잘못된 만남이거나 별 의미가 없는 만남이다.

게다가 테오도르의 머리도 언제나 15도 가량 옆으로 살짝 갸우뚱하다. 마치 그가 이 세상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이 세상이 그를 마뜩잖아 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원래 사람들은 시각적인 동물이다. 이것은 직립한 인간과 다른 네발 달린 동물들을 구별해 주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개나 고양이는 후각이 주된 감각이다. 그들은 공간적인 위치를 파악하거나 짝짓기를 할 때 주로 냄새에 의존한다. 심지어 자신의 사회적 위계를 파악할 때도 마찬가지다.

반면 인간은 직립을 한 덕분에 얼굴이땅에서 멀어진 대신에 시야가 확 트이면서 멀리 있는 사물이 자신의 동료인지, 아니면 포식자인지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얼굴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과 몸짓을 바라보고, 여기에서 엄청난 정보를 얻어낸다. 상대방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특히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우리의 뇌는 여기에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엄청나게 활기를 띤다.

그 시선이 따뜻한지, 아니면 살벌한지를 살핀다. 안면은 온화한 낯빛인지 붉으락푸르락 하는지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방을 너무 빤히 쳐다봐도 안된다. 공격이나 모욕의 신호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에 의하면 시선 처리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 타인과 같이 있을 때 안전감을 느끼는 능력의 핵심요소”라고 한다. 그는 “우리는 누군가의 진실성을 판단할 때 ‘영혼의 창’인 눈에 의존한다.”고 말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세일즈맨들이 고객과 만날 때 눈을 맞추되 선글라스를 쓰지 못하게 교육을 하는 이유도 시선을 피하는 것은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주인공 테오도르의 직업은 대필 작가(ghostwriter)다. 나도 대필 작가 노릇을 해본 적이 있어서 좀 안다. 유명한 정관계 인사나 대기업 회장, 대학 총장 등 다양한 사람들의 연설문을 작성하고 회고록 등을 집필해봤다. 고스트라이터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말 그대로 유령작가다.

내가 써준 연설 원고를 유명 의뢰인이 다중 앞에서 잘 읽어주면 한 순간 기분이 좋다. 출판되어 나온 원고가 호평(好評)을 받으면 잠시 뛸 듯이 기쁘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쾌락을 느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는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 간의 사랑이 담긴 편지를 대신 곧 잘 써준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인기 대필 작가다. 그러나 그 것뿐이고, 그 때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나 좀 알아줘!”라고 외쳐온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 명의의 일이 무어 그리 즐겁겠는가. 놀이가 아니고 일이다. 재미없다. 지겹고 힘들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만큼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도 없다. 나처럼 의뢰인과 나름대로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한 경우는 드물지만 매우 행복한 케이스에 속한다.

테오도르처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감정에 이입하여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일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테오도르는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도 쉽지 않은 게 결혼 생활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 테오도르를 찾아온 캐서린은 테오도르가 사람도 아니고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리에 경악한다. “테오도르, 당신은 왜 진짜 감정을 못 받아들이는 거야?” 그렇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진짜 감정과 대면하는 것이 두렵다.

그는 진정한 자신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테오도르가 그리는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 테오도르가 생각하는 세계는 사람 냄새나는 세상이 아니라, 책 속에나 나올법한 가공의 이데아(idea)다.

영화에 설명은 안나오지만 그래서 그는 아내 캐서린과의 찌지고 볶는, 끈적끈적한 이 세상의 삶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모든 걸 알아서 척척 챙겨주는 OS와의 깔끔한(?) 연애에 몰입하는 이유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테오도르. 퇴근 후에도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컴퓨터와 채팅을 하고, 게임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의 한 복판에서도 그는 철저히 혼자다. 오로지 OS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고 OS의 소리를 경청할 뿐이다.

삼삼오오 대화를 하며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해변의 인파 속에서도 홀로 옷을 입고 컴퓨터의 세계에 몰입한 사람은 테오도르 뿐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미움과 그리움이 부딪히고 사랑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애증(愛憎)의 십자로인 것을…

일방적인 내리사랑은 신적(神的)인 자비로움을 빼면 부모님의 사랑 밖에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을 일방적, 독단적으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갈등이 생기면 조정하고 타협하고 소통하는 쌍방향(雙方向)의 삶을 ‘살아내어야’만 한다.

그냥 평범한 줄거리에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는 스토리지만, 그래도 영화가 그리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테오도르가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니라 '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굳이 서로를 옆자리에 앉혀두고도 눈을 바라보며 대화 하지않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을 들 것까지도 없다. 이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 섞인 데쟈뷔는 아마도 '영화 속의 테오도르 모습이 바로 지금의 혹은 앞으로의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하는데서 연유할 것이다.

사족: 영화의 원 제목이 왜 'SHE'가 아니고 'HER'일까?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주체/주격)로 보지 않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사랑하거나 소유하거나 하는 대상(객체/목적격)으로 본다는 것을 스파이크 존스 감독은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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