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이 남편에게 들려준 프러포즈 곡이라는데...

TV조선 ‘내일은 미스 트롯’ 1:1 데스매치에서 홍자(1985~ )가 ‘용두산 엘레지’를 부른 송가인(1986~ , 조은심)과 진검 승부 때 비장의 카드로 쓴 패가 심수봉(1955~, 심민경)의 ‘비나리’이다.
홍자는 울산에서 태어나 2012년 본명 박지민으로 ‘왜 말을 못해’, ‘울보야’로 데뷔하고, 홍자라는 예명으로 ‘그대여’(오동석 작사·작곡, 이정희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싱글 앨범을 내놓았으나, 사정이 생겨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졌다. 이어 ‘Come Back Hong Ja’를 자신이 프로듀싱한 후, ‘어떻게 살아’라는 곡을 발표했다.
초창기 음반을 내고도 성대에 용종이 생겨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낸 홍자는 결승전 라스트 미션에서 ‘여기요’(이단 옆차기 작사·작곡)를 부를 때에도 성대에 무리가 가서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진성으로 내지르는 창법으로 우리의 혼을 담아 한을 노래하는 이 시대의 가객 장사익(1949~ ) 선생도 가끔 성대에 이상이 생겨 공연을 자제하곤 한다. 이는 특히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가 유념해야 할 문제로, 두성 발성법의 개선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비나리’란 ‘무엇인가를 빈다’는 의미의 명사형으로 비는 행위 일체를 가리키는데, 덕담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15명 남짓한 비나리패가 다양한 굿을 벌인 후 마지막으로 행하는 집의 수호신으로 성주를 모시는 성주굿을 말하는데, 남사당패가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비나리를 전승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비나리’가 간절한 소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비나리’를 부른 심수봉!
나지막이 이름만 불러보아도 가슴 저며 오는 신이 내린 비음의 가수. 호적에는 1955년 생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실은 1950년에 서산 출생으로 뼛속까지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심재덕은 민요 연구가였고, 당숙 심사건은 판소리 무형문화재, 큰고모 심혜영은 조선 권본과 대정 권본의 예인, 작은고모 심화영은 승무 무형문화재이자 판소리 명창이었으며,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부 심정순은 박동진(1916~ 2003) 선생과 함께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었고, 증조부 심팔록은 가야금과 피리의 명인이었다고 한다.
절대음감을 타고난 심수봉은 인천 인화여고를 졸업하고, 1974년 미8군 무대에서 보컬 그룹 ‘논스톱’ 드러머로 활동하면서 호텔 로비 등에서 재즈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 인기 절정의 가수 나훈아(1947~, 최홍기)의 눈에 띄어 1976년 ‘여자이니까’(나훈아 작사·작곡)를 취입 하였으나, 발매 직전 운명의 신은 더 큰 행운을 예비하고 잠시 출시를 미루게 한다.
만학으로 명지대에 재학 중이던 심수봉은 아직 심민경이라는 본명으로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발칙(?)하게도 직접 작사·작곡한 트롯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때 함께 출전한 대학생이 배철수(1953~ ), 노사연(1957~ ), 임백천(1958~ )이었고,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가 대상을 수상했으며, 노사연이 ‘돌고 돌아가는 길’로, 입상하였다.
대학가요제에서는 트롯이 대회 취지에 맞지 않아 입상에 그쳤지만, 눈 밝은 지구레코드사에 픽업되어 ‘가는 세월’을 부른 서유석(1945~ )의 권유로 예명을 심수봉으로 바꿔 ‘그때 그 사람’을 출반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다.
그러나 운명의 신의 질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와대 비공식 연희에 초청받곤 했던 심수봉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현장에서 ‘그때 그 사람’을 부르다 역사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든다.
또 그의 자작곡인 드라마 ‘순자의 가을’ OST를 불렀는데, 당시 영부인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했다.
그 후 ‘날 보러 와요’로 가수로 데뷔한 코미디언 방미(1960~ , 박미애)가 1983년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 밖에 눈물짓는 날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없이 본체 만체 흘러만 가는데’에서 둘째 소절을 곡명으로 삼아 출반하여 히트를 친다.
여러 형편상 활동을 중단하다가 1984년 발표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다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나,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에/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가사에서 정착해있는 여자를 항구로, 떠나는 남자를 배로 비유한 것이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또 1985년 발표한 ‘무궁화’ 역시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조치를 받았다.
이 몸이 죽어 한줌의 흙이 되어도/ 하늘이여 보살펴 주소서/ 내 아이를 지켜 주소서/ 세월은 흐르고 아이가 자라서/ 조국을 물어오거든/ 강인한 꽃 밝고 맑은 무궁화를 보여주렴/ 무궁화 꽃이 피는 건/ 이 말을 전하려 핀단다/ 참으면 이긴다 목숨을 버리면 얻는다/ 내일은 등불이 된다 무궁화가 핀단다.
날지도 못하는 새야 무엇을 보았니/ 인간의 영화가 덧없다/머물지 말고 날아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하늘에 산화한 저 넋이여/ 몸은 비록 묻혔으나 나라를 위해 눈을 못 감고/ 무궁화 꽃으로 피었네/ 이 말을 전하려 피었네/ 포기하면 안된다 눈물 없인 피지 않는다/ 의지다 하면 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렌의 애가’의 시인 모윤숙(1910~1990)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연상케 하는 이 노랫말은 심수봉이 어려운 상황에서 큰아들을 낳으면서 다음 세대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항설(巷說)에는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후 여러 번 심수봉의 꿈에 나타나 부탁한 내용을 가사로 썼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987년에는 ‘사랑밖엔 난 몰라’, 1997년에는 러시아의 알라푸가초바(Alla pugatcheva)가 부른 Million roses 번안곡 ‘백만송이 장미’가 대중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파란만장한 인생과 사랑 끝에 심수봉은 1995년 남편 김홍경과 단란한 가정을 꾸몄는데, 그녀가 남편에게 바친 프러포즈 곡이 바로 ‘비나리’이다.
심야방송이 끝나면 집까지 바래다주는 자상한 연하의 PD에게 이 노래를 지어 녹음한 후 늦은 밤 차 안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며 마음을 전해도 무심한 사내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하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이러한 사연을 음미하며 ‘바나리’ 가사를 훑어보기로 한다.
큐피트 화살이 가슴을 뚫고 사랑이 시작된 날/ 또 다시 운명의 페이지는 넘어가네/ 나 당신 사랑해도 될까요 말도 못하고/ 한없이 애타는 나의 눈짓들/ 세상이 온통 그대 하나로 변해버렸어/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벌써 무대로 올려졌네/ 생각하면 덧없는 꿈일지도 몰라/ 하늘이여 저 사람 언제 또 갈라놓을 거요/ 하늘이여 간절한 이 소망 또 외면할 거요/ 그 남자를 사랑하게 해줘요/ 나 당신을 사랑하게 해줘요 워워/ 사랑하게 해줘요.
사랑의 시작은 화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 치명적으로 심장을 관통하여, 이때부터 다른 운명이 시작된다.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세상이 온통 그 사람과 연관 지어 변해 버린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준비 없이 큐 사인이 떨어진다.
사랑의 아픔을 당해 본 자만이 이런 불안감의 절규를 토해 낼 수 있다. “하늘이여 저 사람 언제 또 갈라놓을 거요?”
비나리 중의 비나리이다.
* 만담가 장광팔은...
본명은 장광혁. 1952년 민요만담가 장소팔 선생 슬하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의 전통 서사문학 만담과 대중가요 가사연구에 대한 글쓰기와 만담가, 무성영화 변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서사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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