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멈춰 선 나를 다시 걷게 만드는 힘
재능 말고 노력에 대해 칭찬하라

1970년대 당시 심리학계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다. 행동주의, 인지주의, 정신분석 등 수많은 학파가 팽팽하게 맞서며 저마다의 심리 치료법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사람이 변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치료법은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은 효과가 없는지, 그 근본적인 차이를 만드는 ‘마음의 스위치’가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리학계의 이단아와 뱀 실험

이때 스탠퍼드 대학의 젊은 거장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대담한 가설을 세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외부의 자극이나 보상이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내면의 믿음이 행동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극단적이고 위험천만한 실험을 설계했다. 바로 뱀 공포증 환자들에게 거대한 보아뱀을 맨손으로 만지게 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이야말로 내면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실험 초기, 반두라는 환자들에게 뱀을 안전하게 다루는 기술과 지식을 충분히 교육했다. 이론적으로 그들은 뱀을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막상 뱀과 마주하자, 그들은 머리로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극심한 공포에 압도되어 배운 기술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발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현상을 통해 반두라는 결정적인 사실을 간파했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은 단순한 기술(Skill)의 습득이 아니라, 그 기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Belief)에 있었던 것이다.

확신을 얻은 반두라는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무작정 기술을 강요하는 대신, 유도된 숙달(Guided Mastery)이라는 정교한 단계를 설계했다. 처음에는 안전한 유리 벽 너머에서 뱀을 관찰하게 했다. 환자가 안심하면 문을 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했고, 익숙해지면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뱀을 살짝 톡 건드려보게 했다. 연구팀은 환자가 아주 미세한 시도라도 할 때마다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절대 불가능하다며 뒷걸음질 치던 사람들이 장갑을 벗고 뱀의 꼬리를 만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뱀을 맨손으로 잡고, 자기 팔과 몸 위를 자유롭게 기어다니게 하는 단계까지 성공한 것이다.

실험 후 반두라가 “이제 뱀이 무섭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아니요, 여전히 징그럽고 무섭습니다”라고 답했다. 공포라는 감정 자체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덧붙여 말했다. “무섭지만, 제가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술과 지식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공포의 벽을 ‘나는 이 상황을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이 무너뜨린 것이다. 반두라는 이 강력한 믿음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명명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이용해 반두라의 실험을 이미지화했음 /나노바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이용해 반두라의 실험을 이미지화했음 /나노바나나

멈춰 선 나를 다시 걷게 만드는 힘

자기효능감은 단순히 “나는 멋진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막연한 자존감과는 다르다. 이것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내가 가진 기술과 능력을 실제로 발휘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실천적인 효능(Efficacy)에 대한 믿음이다. 앞선 실험에서 보았듯 아무리 뛰어난 스펙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효능감이 작동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가진 것을 하나도 써먹지 못하게 된다.

반두라는 이 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자기효능감은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흥미(Interest)와 발달까지 결정짓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분야에는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지만, “나는 못 해”라고 단정 지은 분야는 본능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즉, 어떤 일을 포기하는 이유는 그 일이 정말로 싫어서라기보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서 흥미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효능감의 부재가 우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셈이다.

반면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난관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피해야 할 위협이 아니라 정복해야 할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나는 능력이 없어”라며 주저앉기보다는 “노력이나 전략이 부족했군”이라며 털고 다시 일어선다.

결국 우리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태워야 할 연료는 지식이나 기술 이전에 바로 이 자기효능감이다.

그렇다면, 반복된 좌절로 이미 바닥을 드러내며 경고등을 깜빡거리는 자동차의 연료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채울 수 있을까?

데일 카네기의 처방: 사람을 키우는 '제3의 칭찬'

인간관계의 바이블로 불리는 데일 카네기는 그의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그 해답으로 ‘칭찬’을 제시한다. 특히 리더십을 다루는 제4부의 6번째 원칙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아주 작은 진전이라도 칭찬하고, 진전이 있을 때마다 칭찬하라. 동의는 진심으로 하고, 칭찬은 아낌없이 하라. (Praise the slightest improvement and praise every improvement. Be 'hearty in your approbation and lavish in your praise.)”

이 대목에서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카네기는 책 앞부분에서도 칭찬하라고 하지 않았나? 왜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카네기가 말하는 칭찬의 결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1부에서 말한 첫 번째 칭찬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윤활유’였다면, 4부 초반에 등장하는 두 번째 칭찬은 쓴소리하기 전에 상대방의 방어기제를 낮추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제4부 6번째 원칙의 칭찬은 앞선 두 가지와는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상대방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강력한 ‘추진제’이다. 단순히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다는 효능감을 강화하여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캐롤 드웩의 발견: '재능' 말고 '노력'을 말하라

카네기가 제시한 ‘제3의 칭찬’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칭찬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칭찬은 잘못 쓰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스탠퍼드 대학의 또 다른 심리학 석학, 캐롤 드웩(Carol Dweck) 교수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젊은 시절 드웩 교수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며 한 가지 기이한 수수께끼에 빠졌다.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아이들은 오히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반면, 성적이 평범한 아이 중 일부는 실패를 겪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계속 도전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실패 앞에서 아이들의 태도를 극명하게 가르는 것일까?’ 그녀는 수십 년간의 방대한 연구 끝에 그 비밀이 바로 아이들이 듣고 자란 ‘칭찬의 방식’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드웩 교수의 실험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퍼즐을 풀게 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누어 칭찬했다. A그룹에는 “와, 점수가 높네. 넌 정말 똑똑하구나!”라며 타고난 ‘재능’을 칭찬했고, B그룹에는 “와, 점수가 높네.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라며 문제 해결의 ‘과정’을 칭찬했다. 이후 더 어려운 문제를 주자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재능에 대해 칭찬하면 독이 되지만 노력이나 작은 진전에 대해 칭찬하면 대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재능에 대해 칭찬하면 독이 되지만 노력이나 작은 진전에 대해 칭찬하면 대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똑똑하다’는 재능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자 급격히 무기력해졌다. 그들에게 실패는 ‘나의 멍청함’을 증명하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 없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고 안주하려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에 갇혀버렸다.

반면, 노력과 전략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실패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신호일 뿐이었다. 그들은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다르게 풀어볼게요!”라며 더 어려운 문제에 덤벼드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보여주었다.

카네기가 콕 집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진전(slightest improvement)”을 칭찬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넌 천재야”라는 말은 아이의 발목을 잡지만, “이번에 시도한 그 전략이 유효했어”라는 말은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제보다 나아진 행동과 과정을 포착하여 격려할 때 비로소 반두라가 말한 자기효능감이라는 연료가 채워지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나아지고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수많은 ‘기대 이하’의 순간들과 마주한다. 자녀의 성적표가 바닥을 칠 때, 믿었던 팀원이 가져온 결과물이 엉망일 때, 리더와 부모의 마음속에서는 불길 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 순간 터뜨리는 실망과 분노는 뱀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상대방에게 “왜 뱀을 못 잡느냐”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상대방의 자기효능감에 치명상을 입히고, “나는 역시 구제 불능이야”라는 무기력을 학습시켜 결국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간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리더와 부모는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필사적으로 눈을 크게 뜬다. 잿더미처럼 보이는 실패 속에서도 아직 꺼지지 않은 노력이라는 불씨를 찾기 위해서다. 비록 결과는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시도했던 새로운 접근이나 지난번보다 나아진 태도를 기어코 찾아내어 칭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이다.

이것은 남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혹시 지금 거듭된 실패로 자신에게 실망해 있는가? 그렇다면 축구 선수 박지성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그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입단 초기, 홈 팬들에게조차 야유받으며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을 때 그를 지켜준 것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었다. 그는 경기장 위에서 자신이 했던 아주 사소한 성공에 집중했다.

“오늘 관중들이 나에게 야유를 퍼부었지만, 그래도 아까 그 짧은 패스 하나만큼은 정확하게 연결했잖아. 그거면 됐어. 나아지고 있어.”

모두가 그를 비난할 때, 그는 자신의 작은 진전을 찾아내어 칭찬했다. 그 사소한 패스 하나에 대한 인정이 바닥난 효능감의 탱크를 다시 채웠고, 결국 그를 전설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금 낙심해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혹은 지쳐 있는 당신 자신에게 해줄 말이 없다면, 뱀 실험에서 장갑을 끼고 뱀을 살짝 건드렸던 그 순간처럼, 혹은 박지성이 성공시켰던 그 짧은 패스 하나처럼, 아주 미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작은 진전을 찾아내자.

“결과는 아쉽지만, 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그 끈기만큼은 정말 훌륭했어.”

이 한마디가 바닥난 마음의 엔진을 다시 뛰게 할 것이다. 사람은 비난이 아닌,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먹고 자란다. 아주 작은 진전이라도 칭찬하자.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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