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주얼리 '브랜드 가치'로 성장
K-주얼리 금값 상승에 소비 주춤
브랜드·인력 양성 정부 지원 필요
K-팝·K-드라마·K-푸드가 세계를 흔드는 동안, 정작 ‘빛을 다루는 산업’인 주얼리는 왜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한국 주얼리 시장은 명품을 독점한 해외 브랜드와 돌반지·커플링 등 생활용을 지탱하는 영세 브랜드로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디자인·유통 혁신도, 투명한 제도 개선도 더디기만 한 현실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관련 법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기획은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보석감정원, 업계 전문가 등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한국 주얼리 산업의 현주소와 한계를 짚어본다.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K-주얼리’가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지, 제도와 시장, 디자인까지 총체적 해법을 모색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다음 빛나는 이름이 ‘K-주얼리’가 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산업과 정책, 소비가 함께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편집자주]

지난 21일 저녁 찾은 종로3가 귀금속 거리는 빛나는 주얼리가 가득한 진열대와 달리 한산했다. 골목 곳곳의 매장은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지만 발길을 멈추는 손님은 드물었다. 여러 점포가 모여 있는 대형 주얼리 판매 상가 1층에는 점원들이 계산대를 지킬 뿐 적막한 분위기였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었음에도 가게를 찾는 손님은 적었고, 간간이 들른 손님조차 “금값이 너무 비싸서 망설여진다”는 말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종로 주얼리는 수입 명품 주얼리의 반대편에 있는 국내 생산 기반의 주얼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한때 3000여 개의 도·소매점과 세공소가 모여 전국 귀금속의 80%가 거쳐가던 ‘한국 주얼리의 심장부’였던 종로3가는 이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 위축, 금값 상승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K-주얼리를 대변하는 종로 주얼리 시장이 점차 위축돼 가고 있다. 2~3평 점포에도 수억원의 권리금이 붙던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무권리금 매물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10년째 가게를 지키는 박모(58)씨는 “금값이 너무 올라 예물이나 돌반지를 사러 오는 손님 자체가 적어졌다”며 “장사한 세월 중 올해가 가장 버겁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얼리 점포를 운영하는 정씨는 "18K 반지 하나라도 하려면 1.56돈은 돼야 하는데 120만~150만원은 한다"며 “한 돈짜리 돌반지 하는 것도 80만원이 넘는데 누가 사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주얼리 시장은 수십 년째 ‘두 개의 시장’으로 쪼개져 있다. 한쪽에는 까르띠에·불가리·티파니로 대표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독점한 고가 시장이, 다른 한쪽에는 돌반지·커플링·소규모 공방이 이끄는 내수 중심의 국산 주얼리 시장이 존재한다. 양분된 시장에서 국산 주얼리 시장은 수입 명품 주얼리에 밀려 입지를 잃어가는 게 현실이다.

주얼리 소비가 큰 예물 시장에서는 두 개의 시장이 더욱 극명히 갈린다. 실용성과 자산 가치를 중시하며 종로 금은방에서 맞춤 반지를 선택하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아직까진 명품 브랜드 주얼리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인 만큼 확실한 품질, 독점적인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가 주는 신뢰감과 상징성이 명품을 선택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종로 예물 반지가 100만~300만원대의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한 반면, 명품 예물 반지는 300만~1000만원대 이상으로 브랜드 가치에 따른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된다. 명품 브랜드가 국내에서 1년에만 수차례 가격을 인상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수요는 높다. 명품 주얼리 가격이 부담스러운 MZ세대 예비부부들은 최근 중고 명품 예물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는 명품 주얼리에 대한 꾸준한 선호를 보여준다. 특히 캉카스백화점 등 '민트급' 전문점은 신품에 준하는 명품 리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내년 초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 김모씨(35세)는 “사실 예산만 된다면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예물을 구매할 것 같다”며 “웨딩링은 평생 간직할 것인 데다 명품 브랜드라는 상징성 때문에 만족감이 더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개로 갈라진 시장, K-주얼리의 현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주얼리 시장의 성장 동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반면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영향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의 2024년 시장 동향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체 주얼리 시장에서 국산 주얼리의 점유율은 2020년 83%에서 2024년 69%로 하락했다. 반면 해외 명품 브랜드를 포함한 수입 주얼리는 같은 기간 17%에서 31.2%까지 확대됐다.
“국내 시장은 이미 수입 명품 브랜드가 장악한 상태입니다. 고가 제품 수요는 전적으로 외산이 가져갔죠. 수입 럭셔리 제품들은 브랜드 밸류가 높아요. 똑같은 소재로 만드는데 수입 명품과 종로 제품의 가격 차이가 많이 납니다. 상류층이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이 브랜드 밸류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수입 명품 주얼리를 계속 사는 거죠.”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

국산과 수입 주얼리 업체별 매출도 극명히 차이난다. 국산 주얼리 브랜드들의 실적은 최근 5년간 급격히 위축됐다. 로이드·오에스티를 보유한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월드의 주얼리 사업부 매출은 2019년 1500억원대에서 지난해 720억원대로 반 토막 났고, 영업이익도 138억원에서 3억원 안팎으로 추락했다. 스톤헨지·로즈몽을 유통하는 우림에프엠지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1798억원에서 1100억원대로, 영업이익은 137억원에서 56억원으로 감소했다. 제이에스티나도 같은 기간 매출이 948억원에서 744억원으로 20% 넘게 줄며 지난해 적자를 냈다. 올해 역시 국내 주얼리 업체 매출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2019~2024년 사이 부쉐론의 판매액은 8배 이상 늘었고, 쇼메·반클리프아펠·루이뷔통·불가리 등 대부분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한국 주얼리 시장 전체 성장률인 49.9%를 크게 웃도는 신기록을 냈다.
중견 규모의 주얼리 업체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아서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15% 떨어졌다. 백화점의 다른 국내 브랜드들도 50~70%가 빠졌다고 한다”며 “그런데 티파니는 30%가 더 올랐다. 이는 결국 브랜드 밸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은 인구 절벽과 경기 침체로 전반적인 소비 시장이 위축된 상태다. 국내 주얼리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세계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마저 글로벌 브랜드에 밀리는 상황에서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내 주얼리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B2B로서의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만한 수준의 수출 주얼리 브랜드는 전무하다.
지난해 한국의 주얼리 수출액은 5억6499만 달러(한화 약 7706억원)였다. 전년 대비 31.4% 성장하는 성과를 보였지만 이를 실질적인 수출 경쟁력 강화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는 국내외 금 시세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금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품목 분류 조정을 한 결과로 해석된다. 또한 이 수출액 성과는 소수의 상위 기업에 한정된다. 1달러 이상 수출 실적이 있는 기업은 총 200여개로, 그 중 수출 실적이 천만 달러 이상인 기업 수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특히 수출업체들 중 대다수는 주얼리 브랜드보다 마운틴(주얼리 빈틀, 보석을 담기 전 세공품) 수출업체가 차지한다.

글로벌 브랜드는 날개 달았는데, K-주얼리는 왜 멈췄나
한국 주얼리 시장의 양극화는 금값 상승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글로벌 양적완화로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찍자 국내 주얼리 시장은 구조적 변곡점을 맞았다. 종로 주얼리는 제품 가격을 금값 시세에 '가공비(공임)'를 더하는 방식으로 책정한다. 문제는 이 가공비가 고정돼 있어 제품의 '부가가치'가 낮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명품 브랜드가 원가 300만원짜리 제품을 900만원에 판매할 때, 종로에서는 300만원짜리 제품에 10만~20만원 가량의 가공료를 붙여 320만원 정도에 판매하는 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원자재인 금값이 급등할 경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최근 3년간 금값이 폭등하면서 K-주얼리 제품 가격 상승 폭이 명품 주얼리보다 훨씬 커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결국 일반 소비 계층의 구매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온현성 소장은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가 갤럽과 공동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얼리 구매율은 한때 19~20%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13~14% 수준으로 급락했다”며 “이는 100명 중 20명이 주얼리를 구매하다 13명만 구매하게 됐다는 뜻으로, 구매자 수가 40% 이상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높아진 금값에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변화된 점도 양극화를 부추겼다. 중산층 이상의 상류층 소비자들은 금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리셀(재판매) 가치까지 보장되는 해외 명품 주얼리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 국내 제품은 재판매 시 ‘금값’만 인정받지만, 해외 브랜드는 브랜드 가치가 프리미엄을 형성해 투자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산 주얼리는 ‘품질 대비 저렴한 제품’이라는 가성비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됐다. 그 결과 소비자 인식에서도 ‘국산=가성비’라는 프레임이 굳어졌고, 독자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할 기회를 놓치며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치 마케팅’에 맞설 힘을 점점 잃게 됐다.
금 함량에 대한 신뢰 문제도 국내 주얼리 시장을 위축시킨다. 업계 내부에서 금 함량이나 순도에 대한 통제 장치나 제도가 잘 돼 있지 않아 금 함량을 속이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한다.
익명을 요구한 종로 주얼리 업계 관계자는 “일부 사업자가 은·텅스텐 등을 섞어 함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금 1㎏ 가격이 1억8000만~1억9000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10%만 줄여도 약 2000만원 가까이 되는 차익이 발생한다. 종로 시장에서 매일 수백 t씩 재료가 거래되니 얼마나 많이 남겨 먹겠는가? 미량의 속임수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고 시장 구조상 유혹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가 누적되면서 브랜드 신뢰도의 부재가 국내 시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함량·품질에 대한 철저한 보증이 존재해 소비자 불신이 거의 없지만, 국내 시장은 ‘직인·상표가 없는 익명 생산 구조’가 여전히 많아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실제로 방송 고발이나 소비자 피해 사례가 간헐적으로 발생할 때마다 “가격은 비싸지만 믿고 살 브랜드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이는 곧 구매 감소와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내 주얼리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소비자의 구매 감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산 주얼리는 디자인·품질·A/S 속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해외 명품 브랜드의 경우 단순 수리에도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는 사례가 흔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주문부터 수리까지 대부분 1~2주 안에 처리할 만큼 기민한 생산·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 체계 부족, 브랜드력 약세 등 구조적 취약점이 시장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인력 유입이 줄어드는 점도 국내 주얼리 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이미 훌륭한 기술력을 지닌 전문가들은 연로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주얼리 산업을 3D 업종으로 치부하며 진입을 꺼려한다. 공임이나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종로 주얼리 시장에서는 단가 경쟁이 치열한데, 금값이 오르니 공임을 낮춰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금이 낮으니 인력 유입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산업 자체가 축소되니 디자이너 유입도 감소 추세다.
온 소장은 “사회적 환경 악화와 코로나 여파로 대학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크게 줄면서 젊은 디자이너 유입이 거의 끊겼다”며 “신제품 개발이 막히니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는 다시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콘텐츠를 수반해 함께 K-주얼리는 키우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적으로나 제도적 측면에서 지원이 돼야 한다. 정부가 수출 지원을 위해 한국관을 운영하거나 K-팝과 K-드라마에 맞춰 한국 지역 소재와 가치를 이용한 디자인 제품을 개발해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여러 기회들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내 주얼리 업체들은 5인 미만의 영세 업체들이 많아 기회가 있어도 이를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온 소장은 “한국은 제작·A/S 속도와 품질이 세계적으로 강점이 있지만, 금값이 오르면 어느 나라든 시장이 움츠러든다”며 “이 상황을 기회로 만들려면 제도 개선과 산업 기반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내 주얼리 시장의 양극화와 내수 부진이 심화되는 가운데, 'K-주얼리'는 더욱 치열해지는 수출 시장에서조차 해외 경쟁국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주얼리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터키와 같은 국가들은 높은 원가 경쟁력과 유럽 시장 접근성을 바탕으로, 과거 한국이 강세를 보였던 세공 및 마운팅(보석을 틀에 고정하는 작업) 물량을 상당 부분 가져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디자인이 아직 저평가돼 있지만 현지 업체들이 한국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모방할 만큼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K-주얼리'는 현재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글로벌 시장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인지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글로벌 명품 주얼리와의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 의지와 지원이 절실하다.
온 소장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얼리 산업 발전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정부의 예산 투자와 함께 법·제도 개선, 세제 개편 등이 궤도에 오르면 수출 경쟁력 강화, 디자인 혁신, 기술 개발, 그리고 인재 양성이 유기적으로 연동돼 'K-주얼리'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시리즈 예고
본 기획은 3회에 걸쳐 한국 주얼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개선 과제를 짚는다.
①편: 해외 명품 ‘훨훨’ vs 국산은 ‘위축’···양극화 늪에 빠진 K-주얼리
②편: K-주얼리, 빛을 잃은 산업···법·제도 없는 무방비 시장
③편: K-주얼리 르네상스를 위하여···글로벌 경쟁력 회복 위한 해법은?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