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 정도 아냐" vs '유산영향평가' 해야
전문가 "명백한 문화 파괴"···정치권도 가세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에 30층 넘는 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재개발 계획을 공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종묘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있는 '세운4구역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의 2번 게이트다. /김민 기자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에 30층 넘는 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재개발 계획을 공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종묘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있는 '세운4구역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의 2번 게이트다. /김민 기자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에 30층 넘는 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재개발 계획을 공표해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해당 계획이 경관을 파괴하며 이것이 문화 보존을 등한시하는 풍조라고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주변 주민들과 전문가의 반응은 차갑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과 관련한 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는 종로 변 55m에서 98.7m, 청계천 변 71.9m에서 141.9m로 각각 상향됐다. 청계천 변 기준으로 보면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에 최고 142m 높이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세운상가에서 찍은 '세운4구역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 2번 게이트'의 모습이다. /김민 기자
세운상가에서 찍은 '세운4구역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 2번 게이트'의 모습이다. /김민 기자

그러나 해당 지역이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에 있어 경관 보존을 둘러싼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실제로 종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조건에도 '경관 악영향 미치는 인근 지역 고층 건물 인허가 없음 보장'이 존재한다. 유네스코 역시 지난 4월 서울시 재개발 추진에 앞서 유산 영향 평가를 먼저 할 것을 요청하는 권고안을 보냈다.

개발 반대 입장인 국가유산청은 전날 세운4구역 개발과 관련해 유네스코로부터 받은 외교 문서를 공개하며 강력한 조치를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시는 해당 조건이 법적 의무는 아니며 경우 세운4구역이 종묘로부터 180m 떨어진 곳이라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8일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부정적 의견에 반박했다. 오 시장은 김규남 의원(국민의힘·송파1)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세운지구 재개발 예상도를 꺼내며 "바로 이 그림이 지금 우리가 짓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운2구역까지 포함해서 다 완성이 된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눈이 가려지고 숨이 막히고 기가 눌리는 정도는 아니라고 저희는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서울시는 논리가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의 주장은 건설 공사비를 위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투기 자본 회사의 농간에 놀아난 것밖에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이미 해당 문제가 15년 전부터 결론이 나온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이코모스(ICOMOS)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으며 유네스코에서도 시민 단체의 의견이 맞다고 본다"라고 했다. 원래 건물의 제한이 71.9m였던 것도 이런 활동 덕분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코모스는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의 약자로 전 세계 기념물과 유적지의 보호와 보존을 목표로 하는 국제 비정부 기구다.

여성경제신문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종묘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세운4구역 도시 정비형 재개발사업 공사 현장'의 2번 게이트가 있는 상황이었다. 해당 게이트는 세운상가와 바로 붙어 있었다.

세운상가 앞 횡단보도의 모습이다. 건너편에 바로 종묘 입구가 보인다. /김민 기자
세운상가 앞 횡단보도의 모습이다. 건너편에 바로 종묘 입구가 보인다. /김민 기자

세운상가 주민들도 공사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하는 최 씨(남성, 70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층 빌딩 건설은 지주들한테는 좋은 것"이라며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유산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사장도 "무리해서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세운상가 논란이 계속되면서 정치권 공방도 더욱 격해지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종묘를 찾아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해지될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심각한 우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도 서울시의 개발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K-컬처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서울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전통 경관'과 '개발 이익'의 충돌을 어떻게 풀어낼지 서울시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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