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모델서 ‘몸 이해하는 AI’로
이미 생물학 학습은 진행됐으나
연속 기억 등 3가지 관문 넘어야

오픈AI가 의료 영역으로 발을 넓히며 ‘AI 건강 비서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의료 챗봇에서 나아가 인간의 몸·습관·생체 리듬을 함께 읽는 차세대 인공지능(AI)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다. 언어 중심 모델에서 ‘인체 데이터 해석형 AI’, 즉 초기형 범용인공지능(AGI)으로 향하는 전환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오픈AI가 개인 건강 비서 서비스와 건강 데이터 관리 도구 등 소비자용 헬스케어 제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용자들이 일상 건강부터 복잡한 의료 상담까지 AI에 묻는 일이 급증한 것이 배경이다.
조직 재편도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오픈AI는 6월 의료 플랫폼 ‘독시미티’ 공동 창업자 네이트 그로스를, 8월에는 인스타그램 부사장 출신 애슐리 알렉산더를 영입해 건강 제품군을 총괄하게 했다. 샘 올트먼 CEO 역시 “GPT-5는 건강관리 전반에서 실질적 도움을 주는 수준으로 확장된다”고 밝혀 헬스케어 진출을 공식화했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오픈AI의 움직임을 신사업 차원을 넘어 언어모델의 진화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본다. 지금까지의 AI가 텍스트·음성 중심이었다면 건강 비서는 심박·수면·음성 톤·생활 패턴 같은 비언어적 신호까지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능 확장뿐만 아니라 모델 구조를 건강 데이터용으로 재정비해야 가능한 일이다.
기술적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 7월 공개된 GPT-5 내부 실험 항목에는 ‘biology-benchmarks’라는 생물학 평가 세트가 포함돼 있었다. 분자생물학·생리학·임상 판단을 다루는 고차원 테스트로 GPT가 처음으로 ‘생체 데이터 이해 능력’을 시험한 정황으로 해석된다.
이 변화 속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AGI 건강 비서(Health Agent)다. 질병 검색형 AI가 아니라 사용자의 수면 주기·생활 습관·음성·표정 변화·센서 입력 등을 통합 분석해 상태를 해석하고 조언을 제시하는 시스템이다. 언어모델과 바이오모델이 결합한 말 그대로 ‘몸을 이해하는 AI’의 시초형이다.
다만 이를 구현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다중 모달 이해력—텍스트·이미지·음성뿐 아니라 웨어러블에서 나오는 생체 신호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지속학습 능력—시간에 따라 변하는 건강 상태를 기억하고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의료 윤리·위험 판단 알고리즘의 내재화—판단 과정이 검증 가능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관문을 넘으면 AI는 단순 예측기를 넘어 데이터 의사(Data Doctor)로 진화한다. 대화는 심리 리듬을, 생체 신호는 신체 리듬을 알려주는 이중 루프(dual loop) 구조가 완성되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통계 모델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몸은 매 순간 변하는 물리·생리 시스템이다. 따라서 텍스트 중심 AI를 넘어서 생물정보학·신경과학·인지심리학이 결합한 구조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결국 경쟁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이해의 깊이다. 질문에 답하는 AI에서 몸의 신호와 시간의 흐름을 함께 해석하는 AI로 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GPT-5의 생물학 실험은 그 첫 장면을 보여준 셈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오픈AI가 노리는 것은 시장 점유율 뿐 아니라 인체 데이터를 언어처럼 다루는 다음 인터페이스 표준”이라며 “AGI에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지만 표준을 선점하는 순간 건강 비서는 가장 현실적인 의료 도우미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