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응급의학의사회 기자회견
“응급·최종 치료 분리가 관건”
“법적 위험 완화·인프라 개선”

7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형민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7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형민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환자 수용만을 강제하는 법은 해법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장의 진료 여건과 인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 오히려 응급의료체계를 흔들고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형민 회장은 “코로나19부터 의정갈등, 비상 진료까지 현장을 지켜온 응급의료진을 정부가 ‘토사구팽’하려 한다”며 “우리 사회가 응급실 뺑뺑이를 ‘의사가 환자를 안 받는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정작 응급실이 환자를 못 받는 이유는 최종치료 인프라 부재와 과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응급실 강제수용은 환자 피해와 시스템 붕괴를 초래한다. ‘뺑뺑이 해소’의 의미와 목표부터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응급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세 가지 전제 조건으로 △응급의료진 법적 위험성 완화 △응급실 과밀화 해소 △최종치료 및 취약지 인프라 개선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응급치료와 최종치료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며 “응급 단계에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이 이후 결과와 무관하게 형사·민사 책임을 지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수용성 확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응급실 과밀화는 단순히 ‘자리가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최종치료가 불가능해 환자가 머무르는 데서 비롯된다”며 “상급병원 경증환자 이용 제한과 경증환자를 위한 지역 진료체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권역센터·외상센터 등 최종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상급병원과 연계해 1차 응급처치 후 곧바로 전원 가능한 취약지 응급의료기관 연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발의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있다. 개정안은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화로 수용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를 삭제하는 대신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에 ‘수용불가 사전고지’를 하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를 보건복지부령으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24시간 2인 1조 전담 전문의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왼쪽부터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 이형민 회장, 이강의 대외이사, 전호 총무이사 모습 /김정수 기자
왼쪽부터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 이형민 회장, 이강의 대외이사, 전호 총무이사 모습 /김정수 기자

이에 대해 이강의 대외이사는 “응급실 뺑뺑이는 법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 확충이 근본 해법인데 정부는 또다시 탁상행정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당한 수용 거부 사유를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수용불가 사전고지 제도나 2인1조 근무는 현실적 인력·예산 여건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구급대 민원을 줄이려는 행정 편의적 법안일 뿐”이라고 했다.

이 대외이사는 “지난 2년간 정부의 응급의료 대책은 행정·예산 낭비로 끝났다”며 “현장을 모르는 전시행정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실질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규 대변인은 “응급의학과 의사는 무한 자원이 아니다”라며 “법적 부담과 업무 과중이 더해지면 이미 기피과인 응급의학과의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고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19구급차를 통한 응급실 이송은 무료지만 병원 간 이송(EMS)은 유료이자 유한한 자원”이라며 “일부 지역의 경우 한 대의 응급차가 여러 병원을 담당해 한 환자를 이송하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전원이 불가능해 병원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환자에게 약 3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이 같은 현실적 제약과 비용 부담을 국민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응급실에서 1차 처치 후 상급병원으로 재이송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질 텐데 재이송 과정에서 대기와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현실적 병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용만 강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면 풍선효과처럼 다른 왜곡이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이날 “응급실 강제수용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현장 전문가와 함께 논의하라”고 촉구하며 “실질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의 의료진이 먼저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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