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는 병원에 ‘연락만’, 지정 권한 없어
국회 “상황실에 선정권 부여해야” 제안

응급실 뺑뺑이가 해마다 늘어 2024년 재이송 5657건에 달했다. 현행 체계는 구급대원이 병원을 직접 찾아야 해 지연이 불가피하다. 국회와 복지부는 119 상황실에 병원 지정권을 주고 면책 규정을 마련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해외처럼 실시간 병상 정보 공유와 강제 수용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응급실 뺑뺑이가 해마다 늘어 2024년 재이송 5657건에 달했다. 현행 체계는 구급대원이 병원을 직접 찾아야 해 지연이 불가피하다. 국회와 복지부는 119 상황실에 병원 지정권을 주고 면책 규정을 마련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해외처럼 실시간 병상 정보 공유와 강제 수용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응급실에서 환자가 치료를 거부당해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심화하고 있다.

16일 소방청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구급차가 환자를 태운 채 병원을 찾지 못해 재이송을 반복한 사례는 5657건이었다. 2023년 4227건에서 해마다 늘며 2년 새 47% 증가했다. 2022년 말부터 응급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동희법’이 시행돼 응급환자 수용 거부를 막고 있지만, 통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지난달 서울의 한 구급대는 고열로 경련을 일으킨 18개월 영아를 태우고 출동했다. 첫 병원에서 거절당했고 이어 다섯 곳을 더 찾았지만 사정은 같았다. 결국 30km 넘는 거리를 이동해 입원이 가능했다. 보호자는 “눈앞에서 아이가 경련하는데 병원마다 ‘안 된다’며 거절하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했다.

현재 구급대원은 환자를 태운 뒤 직접 병원에 전화를 돌려 수용 여부를 확인한다. 병상이 없다는 답변이 오면 다른 병원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병원 선택 책임이 구급대원에게 전가돼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119 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 지정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법령상 상황실은 ‘안내’ 역할에 머물러 있다.

상황실이 병원을 지정했는데 환자가 도착 후 사망하거나 예후가 악화되면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A씨는 여성경제신문에 “전화상 정보만으로 병원을 정하는 것은 의료행위와 유사한 판단을 요구한다”며 “과도한 법적 부담이 상황실 직원이나 구급대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표준지침’을 마련했다. 응급의료기관이 병상 포화, 진단 장비 사용 불가, 중증 환자 포화 등의 사유로 1회에 한해 최대 2시간 이내 수용곤란을 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병원마다 예외 조항을 활용하면 여전히 거부가 가능하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은 119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이송 병원을 우선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권한을 강화해 응급환자 전원 조정과 병상 추적관리를 맡기는 방안도 별도 법안에 담겼다.

입법조사처는 응급의료법 제15조를 개정해 국가응급진료정보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데이터, 구급활동일지 등을 연계한 실시간 통합정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소방청 산하 구급지령센터가 지역 병상을 일괄 관리한다. 지정된 병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미국은 주 단위 EMS 시스템을 통해 병상·인력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상황실에서 병원을 지정한다. 반면 한국은 구급대원이 직접 전화를 돌려야 하는 구조라 거부가 반복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도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소방·지자체·의료기관 합의를 통해 상황관리센터가 병원 선정 역할을 시범적으로 맡고 있다. 경남도는 응급실 경보 시스템을 구축해 다수 병원의 수용 가능 여부를 동시에 확인하는 방식을 운영 중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이송 지연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강제력과 면책 규정을 함께 갖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응급의료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병원이 수용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며 “미국과 일본처럼 상황실 지정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면책 조항을 법에 명시해 분쟁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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