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회송 급증, 지방은 아예 갈 곳 없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13% ‘역대 최저’
정부 정상화 주장에도 필수의료 붕괴 가속

소아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실에서 아동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뺑뺑이’를 도는 사례가 급증했다. 서울·경기 회송 건수는 5년 새 4배 늘었다. 지방의 경우 응급실 진입조차 막히는 사례도 보고된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13%에 불과해 수련 공백 우려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한시적 대책만으로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소아·응급의료 인력 확충과 지역 균형 배치를 국가의 시급한 과제로 지적했다. /연합뉴스
소아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실에서 아동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뺑뺑이’를 도는 사례가 급증했다. 서울·경기 회송 건수는 5년 새 4배 늘었다. 지방의 경우 응급실 진입조차 막히는 사례도 보고된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13%에 불과해 수련 공백 우려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한시적 대책만으로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소아·응급의료 인력 확충과 지역 균형 배치를 국가의 시급한 과제로 지적했다. /연합뉴스

# 새벽 2시, 아기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다. 아이 엄마는 급히 집 근처 대형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한데 돌아온 대답은 “소아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어렵다”였다. 평소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왔던 아이라 믿고 찾았지만 새벽 시간에는 소아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수용 곤란’ 통보를 받았다. 결국 부모는 아기를 안고 다른 병원을 전전했고 한 시간 넘게 헤맨 끝에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한국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소아·청소년 환자 사이에서 이 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10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미애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에서 ‘수용 곤란’을 이유로 15세 미만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린 건수는 2020년 154건에서 지난해 620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지난해 646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7월 기준) 6438명으로 줄었다. 종합병원조차 당직 소아 전문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소아과는 당직을 응급과는 소아를 꺼린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서울·경기 소아 환자 응급실 회송은 2020년 154건에서 2024년 620건으로 4배 증가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6467명에서 6438명으로 줄며 당직 확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냅킨ai,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서울·경기 소아 환자 응급실 회송은 2020년 154건에서 2024년 620건으로 4배 증가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6467명에서 6438명으로 줄며 당직 확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냅킨ai,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치라도 아이에게 예기치 못한 반응이 나타날 경우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 ‘소아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회송하는 경우가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사례도 잇따른다. 최근 동전을 삼킨 한 아이는 서울 시내 여러 응급실을 4시간이나 떠돌아다닌 끝에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소아응급 전문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대부분의 경우 X레이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며 "의사들이 아이를 기피하는 폭탄 돌리기 문화 탓에 수련을 포기하는 이들까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에 잡히는 회송 건수는 의사가 접수라도 한 뒤 돌려보낸 경우지만 지방에서는 간호사가 아예 문 앞에서 막는 사례도 나온다. 전국 411곳의 응급실 가운데 소아전문응급센터는 12곳, 충북·전남 등은 단 한 곳도 없다. 소아응급 전문의 역시 92명뿐이다. 그 사이 전국 소아 응급 진료 건수는 2020년 76만 건에서 2023년 129만 건으로 3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13.4%에 그쳤다. 일부 대학병원은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수련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도 40% 수준이다. 

김미애 의원은 “아이들이 의사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소아청소년과 인력 확충과 지역 간 균형 배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한편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심장혈관흉부외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과의 복귀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인기과인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은 90%을 웃돌며 정원을 채우는 형태로 정리됐다. 

한 지방 수련병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인기과와 기피과의 격차는 더 심해졌고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꾸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정상화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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