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두 달 만에 “투자 약속 파기” 주장↑
경제 넘어 정치·외교적 파장 고려 지적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세종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이 국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전략산업 관세 인하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합의 불과 두 달 만에 “투자 약속을 파기하고 차라리 25% 관세를 맞자”는 주장이 여권과 중소기업들 등 경제계 일부에서 나온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찬성론자들은 대미 관세 합의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주력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추산에 따르면 관세율이 25%로 유지될 경우 전기차 한 대당 평균 판매 가격은 6000달러 이상 뛰어오른다. 이는 미국 시장 내 경쟁 업체인 테슬라, GM과의 가격 격차를 벌리게 되고 보조금 효과를 상쇄시켜 사실상 판매량 축소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공급량 60% 이상을 한국이 담당하지만, 관세 부담이 높아지면 대만 TSMC, 일본 르네상스 등 경쟁사들이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분야의 경우 SK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이 미국 현지에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어서, 합의 파기가 오히려 ‘이미 진행된 투자조차 불리한 조건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3500억 달러라는 투자 규모 자체가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 GDP의 15%에 해당하는 거액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셈인데, 이는 국내 설비 투자 축소와 일자리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협력사들도 줄줄이 해외로 따라가야 한다”며 “내수 산업 기반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세를 감수하더라도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 중동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수출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맞물려 친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고, 중동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정치·외교적 파장은 양쪽 다 만만치 않다. 투자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면 국내 여론은 “미국 눈치만 보다가 국익을 포기한다”는 비판으로 들끓을 수 있다. 여권은 “동맹 강화와 산업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지만, 야권은 “혈세로 미국만 배불리는 매국적 합의”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반대로 합의를 파기할 경우 미국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협상 파트너’로 낙인찍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관세 협상뿐 아니라 안보·기술동맹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단순히 관세율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며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지, 혹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험난한 길’을 선택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에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