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SNS로 원색적 비난 퍼부어
물밑 협상 성사되기 어려워
정상이면 눈치 보기 멈춰야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의원들이 4박 5일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거쳐 5개의 법안 처리를 끝낸 뒤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29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의원들이 4박 5일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거쳐 5개의 법안 처리를 끝낸 뒤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성훈 대변인은 지난 10월 8일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대변인에게 "선배님 추석 명절 잘 보내셨는지 전화드렸다. 언제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더 잘 모시겠다. 시간 되실 때 식사라도 모시겠다"며 "어제 선배님에 대한 공격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박수현 대변인은 "참 선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분이고 어쩌면 큰 용기를 지닌 분"이라며 "양당의 관계가 이렇게 한 걸음씩 '신뢰와 공감'으로 국민께 다가갔으면 좋겠다"라고 화답했다.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것이 화근이 됐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은 박성훈 대변인의 SNS로 몰려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싸우라고 자리 앉혔더니 시시덕거리고 있었네. 첩자 XX야. 그냥 민주당으로 꺼져라"거나 "민주당 첩자 박성훈은 국민의힘에서 나가길 바란다"는 내용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추석 전에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제안으로 여야의 젊은 정치인들이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함께하자는 시도가 무산된 일이 떠오른다. 

당시 이준석 대표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던 더불어민주당 모경종 의원이 갑작스레 불참을 선언했다. 이 역시 강성 지지층의 압박에 따른 결과였다. 강성 지지층은 모 의원에게 "내란 종식도 안 끝났는데 XXX들이랑 스타나 해야겠냐" "특검 수사를 받아야 하는 이준석과 김재섭과 스타 놀이나 하고 정신이 나갔구먼"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이 두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정치의 회복이 쉽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양 진영 강성 지지층의 이러한 행태는 단순히 여야 간 화합을 방해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정치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서는 성립할 수 없다. 정치는 타협의 기술이며 타협을 위해서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 협상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화합의 시도를 비난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고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과거에도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난 후 '사쿠라'라는 비난을 받은 사례는 있었다. 일부 강성 지지층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지금처럼 극단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16대 국회까지만 해도 여야 의원들이 국회에서는 격렬히 대립하더라도 저녁에는 소주 한잔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일이 많았다. 반면 오늘날에는 여야 의원들이 이런 자리를 갖는 것조차 보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정치의 핵심인 물밑 협상이 성사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공개적으로 협상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치뿐 아니라 대부분의 협상은 비공개 자리에서 합의에 다다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서는 여야 간 협상과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특검법 연장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모처럼 성과를 거두는 듯했지만 불과 24시간 만에 민주당이 협상 파기를 선언한 사례만 보더라도 현재 상황은 사실상 정치가 실종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정치인들은 강성 팬덤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팬덤에 정치인이 종속된 모습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국민 여론보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정치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주체는 정치인도 국민도 아닌 강성 팬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타파해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지키기 위해 팬덤에 맞서지 못한다. 결국 정치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여전히 침묵하는 중도층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이 침묵하는 다수는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치인들은 공천을 받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본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정치인은 존재할 수 없다. 단지 강성 팬덤에 휘둘리는 ‘마리오네트’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강성 팬덤에게서 월급을 받아야지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아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이제 그만 강성 지지층의 눈치 보기를 멈춰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고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다.

여성경제신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yulsh@mju.ac.kr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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