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HD현대重 감점 연장 결정
정치권 상생협력안 실효성 떨어져
경쟁입찰 0.1점 차이로 달라질수도
"토론회 열어 쟁점 투명하게 해야"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따른 보안 감점을 1년 이상 연장하면서 차세대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KDDX) 사업의 공정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업자 선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나온 이번 결정은 경쟁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는 이미 현실화한 해군 전력 공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방사청은 정례 브리핑에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보안 사고에 따른 감점 기간을 올해 11월에서 내년 12월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올해 11월까지 1.8점 감점을 유지하고 이후 내년 말까지는 1.2점 감점을 적용받게 된다.
KDDX 사업은 국내 기술로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함께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프로젝트다. 총 6척을 건조하며 사업비는 7조8000억원에 이른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2년 가까이 수주 경쟁을 이어왔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임직원이 KDDX 관련 군사기밀을 촬영·유출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감점을 적용받았다. 당시 9명이 기소돼 8명은 2022년 11월, 1명은 2023년 12월 각각 형이 확정됐다. 방사청은 당초 두 판결을 동일 사건으로 보고 3년간 감점을 적용했으나 이번에는 "유출된 기밀의 종류와 형태가 달라 동일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지난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동행했다. 국내 조선·방산 대표 기업으로서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힘을 보탠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불과 한 달 만에 KDDX 사업의 룰을 일방적으로 바꿨다.
방위사업청은 사업 구조 개편 명분을 내세웠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을 짜줬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김 부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KDDX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설계·사업 주도권을 한화 쪽으로 쏠리게 하자 "결국 '김동관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HD현대 측은 사전 통보조차 없는 기습 결정에 "공정한 경쟁이 무너졌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사실상 한화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면서 정 회장의 '동행 외교'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무게를 잃고 오히려 쓴맛을 남기는 모양새다.
이번 결정은 KDDX 사업자 선정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부 민간위원은 "범법 행위가 유죄로 판결 났는데 관례대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익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그간 HD현대중공업은 수의계약,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주장하며 대립해 왔다. 방사청은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와 수의계약을 체결해 상세설계·선도함 건조를 추진하려 했으나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본지에 "두 회사를 동시에 지정해 결국 한 곳과 수의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업계 상도에 어긋난다"며 "애초부터 특정 업체를 단독 지정했더라면 지금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개입도 변수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상생협력안이 공식화될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함께 상세설계에 참여하고 초도함과 후속함을 동시에 발주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모두가 만족하는 상생협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드러낸다. 공동 추진 방안은 수년 전부터 거론됐지만 방산업 특성상 작업 효율이 떨어지고 또 다른 보안 유출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전 통보 없이 내려진 이번 결정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HD현대중공업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판단한다"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재검토를 요청하는 한편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당초 방사청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감점 연장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대응 기조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본지에 "방사청이 경쟁입찰로 간다면 기술력으로 공정하게 승부하겠다"며 "결과가 불만족하더라도 법적 대응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KDDX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방사청의 이번 결정은 공정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화오션 주장대로 자율경쟁으로 가더라도 HD현대는 사실상 큰 무리는 없었지만 감점 연장으로 0.1점 차이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업계는 이번 조치로 사업 지연이 이어질 경우 이미 현실화한 해군 전력 공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애초 마지노선으로 꼽힌 10월 결정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면서 계획된 시기를 맞추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지금이라도 조속히 결정돼야 이후 일정을 최대한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회 차원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어 모든 쟁점을 투명하게 다뤄야 한다"며 "특히 방사청은 KDDX와 같은 전략 사업에서 기밀 유출에 대한 일관되고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