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개 서버 소실, 정부 전자문서 허브 포함
본지 온나라시스템 부처 공지 문건 입수
겉으론 접속, 실제론 커뮤니티 긴급 연락
클린 빌드 운운?···수년 행정 공백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미국 방문을 위해 8월 23일 성남 서울공항청사를 나서며 윤호중 행안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미국 방문을 위해 8월 23일 성남 서울공항청사를 나서며 윤호중 행안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행정의 뇌가 멈췄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불탄 서버 중 일부는 온나라시스템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500억 원을 들여 소실된 96개의 서버를 클라우드로 교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부 행정 절차 자체가 뇌사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27일 여성경제신문이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제보에 따르면, 이번 화재 여파로 온나라시스템과 정부전자문서유통센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중앙 클라우드 접속과 정부 디렉토리시스템이 모두 마비되면서 기관 간 전자문서 유통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긴급 업무연락을 통해 각 부처에 수기(종이문서) 방식으로 문서를 기안·결재할 것을 지시했다. 부처 간 공문은 팩스, 공직자 이메일, 우편, 직접 방문 등 아날로그 수단을 활용해야 하며, 받은 문서는 담당자에게 직접 배부하고 분실 없이 보관하도록 안내했다.

또한 복구 이후에는 사고 기간 중 처리된 수기 문서를 전자문서시스템에 ‘비전자문서’로 등록해 정합성을 맞추도록 했다. 행안부는 온나라 홈페이지를 통해 후속 업무연락을 배포할 예정이라며 각 기관에 내부 공지를 철저히 전달할 것을 요청했다.

겉으로는 온나라 홈페이지(onnara.go.kr) 접속이 가능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미 정상 기능이 마비돼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한 긴급 업무연락에 의존하는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화재로 중앙 클라우드 서버와 정부 디렉토리시스템(GDDS)이 동시에 끊기면서 로그인·인증부터 기관 간 수신처 지정까지 핵심 기능이 전부 멈췄다. 겉보기엔 포털이 열리지만 결재·발송·유통이라는 행정 절차의 본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각 부처는 공문을 팩스·이메일·우편으로 주고받고, 받은 문서는 다시 수기 등록해야 하는 비상 매뉴얼에 의존하게 됐다. 사실상 전자정부의 상징이었던 온나라시스템이 ‘껍데기 포털’로 전락한 셈이다. 표면상 포털 접속은 가능하지만 행정 현장은 1990년대 이전 수기 체제로 후퇴했다.

행정안전부의 긴급 지침도 가관이다. 기안과 결재는 종이로, 부처 간 문서 발송은 팩스·이메일·우편으로 대체하라는 내용이다. 수신처 지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공무원은 상대 기관의 팩스번호를 직접 찾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위험은 단순 서비스 정지에 그치지 않는다. 주말 사고라 피해가 축소됐을 뿐, 평일이었다면 정책 결정·예산 집행·대외 공문 발송까지 사실상 불능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온나라시스템은 단순 내부망이 아니다. 모든 공문서 작성·결재·배포의 기반이자, 부처 간 협업을 가능케 하는 ‘국가 행정 버스’다. 이 체계가 마비되면 전 부처가 동시에 침묵에 빠진다. 특히 수기 문서 체계로 전환한 긴급 매뉴얼은 임시 봉합책일 뿐, 새로운 보안 리스크를 내포한다.

행정안전부가 각 부처에 보낸 긴급 공지문

긴급 업무연락(온나라)

< 온나라 (긴급)업무연락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온나라 및 정부전자문서유통센터 서비스 재개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온나라(중앙) 접속이 불가하며, 정부 디렉토리시스템 장애로 기관 간 수신처 지정 기능 사용 불가로 전자문서 유통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관련하여, 각 기관에서는 시스템 정상화 시까지 '행정업무운영 혁신에 관한 규정'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장애발생 기간 중 문서의 기안 및 발신방법 등 안내 사항 ]

1) 문서의 기안 및 결재는 수기(종이문서)로 처리

2) 송신기관의 담당자는 수신기관의 팩스번호 또는 공직자 이메일 확인(유선 또는 누리집 등)하여 공문서를 발송하거나, 우편 또는 직접 방문을 통해 공문서 제출

3) 수신기관에서는 받은 공문서를 해당 업무 담당자에게 배부

4) 배부된 문서가 분실되지 않도록 보관 철저

5) 업무 담당자는 해당 공문서를 서비스 복구 후 문서 생산일, 접수일 등을 고려하여 온나라 업무관리시스템(전자문서시스템)에 비전자문서로 순서대로 등록ㆍ접수 처리

관련내용은 기관 내부 공지 해 주시고, 상세한 업무연락은 온나라 커뮤니티(온나라와 문서24 및 전자문서유통)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긴급)업무연락(온나라) 확인방법 ]

내부망접속> https://www.onnara.go.kr 로그인 > 커뮤니티 클릭 > "온나라와 문서24 및 전자문서유통" 커뮤니티를 통해 업무연락을 드릴 예정이오니, 업무연락 파일을 다운로드 하셔서 업무에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업무 담당자가 아닌 경우, 기관담당자분께 본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 행정안전부 -

 

팩스와 이메일은 위조·도청 가능성이 높고, 수기 공문 분실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업무 연속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기록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복구 이후에도 문제가 남는다. 사고 기간 동안 생산·접수된 종이문서를 다시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날짜·접수번호 불일치, 스캔 오류, 누락 등 ‘불연속성’이 불가피하다.

국민이 직접 체감하는 불편은 비교적 단순하다. 무인민원발급기 오류, 우체국 금융·물류 지연, 세금 납부 기한 연기 같은 가시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면에서는 정부 정책 추진의 핵심인 결재 라인이 전면 정지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온나라시스템은 모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문서 작성, 협의, 결재를 연결하는 뼈대다. 이 체계가 멈췄다는 것은 각 부처가 정책 기안을 올리거나 장·차관 결재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국민 눈에는 ‘민원 불편’으로 비치지만, 실질적으로는 법령 개정, 예산 집행, 외교 협상 지시 등 국정의 흐름이 전부 멈춰 선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복구의 불확실성이다. 단순히 서버를 재가동한다고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폭발로 직·간접 손상을 입은 전산 장비가 많아 교체와 재설치가 불가피하다. 특히 96개 시스템은 ‘이전 복구’가 필요하다고 정부가 밝힌 만큼, 원래 자리에 다시 세팅하는 수준을 넘어 대구 등 다른 센터로 이관해야 하는 대공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중앙 클라우드와 디렉토리시스템이 모두 정상화돼야 전자문서 유통이 가능하다. 따라서 복구는 하루·이틀이 아니라 수주 단위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빠른 복구’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장기화 위험이 상존한다.

특히 이번 전산실 화재로 불탄 서버에는 과거 행정 기록까지 포함돼 있어 복구 난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리지가 고열과 소화 과정의 침투로 손상되면서 데이터 복원은 고도의 포렌식 기술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디스크 플래터가 변형·탄화된 경우 사실상 원본을 복원할 수 없으며, 일부를 건져도 문서 원본·결재 로그·메타데이터의 정합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신경망은 이번 화재로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단순히 서버를 다시 켜는 차원이 아니라 대구 센터로의 이전 복구, 정합성 검증, 장비 조달과 설치 공사까지 거쳐야 할 정도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민관 협력형 클라우드 이전”을 마치 신기술 도입인 양 강조했지만 재난의 책임을 희석하고 빠져나가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특히 삼성SDS와 네이버클라우드를 앞세워 소실된 96개 시스템을 ‘클린 빌드’ 방식으로 재설치하겠다는 방침은 기술적으로 타당하더라도 국가 행정의 장기 공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클린 빌드란 말 그대로 하드웨어 조달–네트워크 재구성–보안인증–데이터 이관–응용시스템 검증을 전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 전산망은 일반 기업용 클라우드와 달리 보안 등급별로 여러 단계의 검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각 부처가 오래 써온 프로그램을 새 환경에 옮기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오류가 잦다. 전자결재, 데이터베이스, 행정표준프레임워크 같은 핵심 시스템은 단순 복사로는 이식할 수 없다. 따라서 “재설치 후 곧바로 정상화”는 현실성이 없고 최소 수개월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1년 가까운 장기 뇌사 상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길어질 경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결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온나라시스템은 대통령실은 물론 국방부와 외교부 문서 흐름에도 연결돼 있어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적대 세력 입장에서는 단일 공격 포인트만 노려도 국가 행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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