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이어 3차도 李 의지 확고
자사주 의무 소각 규모 72조원

연이은 상법 개정이 국내 기업 지배구조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시장과 기업의 시선은 이제 3차 개정안으로 불리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쏠려 있다.
지난 7월 이뤄진 1차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명문화되고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3% 의결권 제한이 강화됐다. 이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2차 개정은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을 2명 이상으로 늘렸다.
현재 국회에서 여당 중심으로 논의 중인 법안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는 일정 기간 내 소각해야 하고, 기존 보유분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전면 봉쇄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 행사에서 3차 상법개정 방향에 대해 "예를 들어 세제 개혁을 통해 더 많은 배당을 이뤄지게 한다든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취득을 이기적으로 남용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하게 될 것"이라며 "그 외에도 합리적으로 기업 의사결정과 경영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제도는 예외 없이 도입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의 우려는 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자사주 의무 소각으로 소멸해야 할 규모는 약 72조원에 이른다. 이는 상위 1000대 기업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액과 맞먹는다.
실제로 기업들은 막판 대응에 나섰다.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을 서둘렀다. 올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교환사채 발행액은 3조54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발행액이 1조2583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임원에게 자사주를 조기 처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시한이 다가오면서 방어 수단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여성경제신문에 "지배구조, 시장 성숙도, 정책·제도의 집행력 등 여러 축이 동시에 개선돼야 밸류업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상법 하나 바꾼다고 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단숨에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이은 개정으로 대주주의 영향력은 이미 크게 축소된 상태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3% 룰’ 강화로 소액주주 연합은 사실상 거부권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까지 강제된다면, 경영권 분쟁이 늘어나고 그 비용이 산업 전반에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혁의 본래 목적은 투명성 강화와 이해관계자 이익 균형에 있다. 그러나 ‘규제의 연쇄’가 기업 활력을 떨어뜨리고 시장 불확실성을 키운다면, 이는 결국 주주 전체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당분간 금융시장과 기업 현장은 상법 3차 개정안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울 전망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