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노동자에게 피해 가능성
자산 편법적 전환 억제력 떨어져
기업 지배구조 개선할 방안 필요

여의도 전경, 여의도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
여의도 전경, 여의도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

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국회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업 활력을 높이자는 재계의 요구에 힘이 실리지만 일각에서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꼼수 경영’을 합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임죄 폐지는 재계의 오랜 숙원사업"이라며 "기업이 자유롭게 경영하고 투자하며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배임죄를 폐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상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재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배임죄 완화·보완·폐지 방안 등을 다양하게 검토해왔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맡은 자가 임무를 위배해 이익을 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끼칠 경우 성립한다. 기업 경영에서 이사의 의무 위반과 직결되는 만큼 주주 보호의 핵심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에 재계에서는 “경영 실패까지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배임죄 폐지가 가져올 후폭풍에 주목한다. 이른바 ‘자산 이탈-임대 전환’ 시나리오다. 일부 사업주가 회사의 핵심 자산이나 기술을 가족 명의의 개인회사로 헐값 매각한 뒤, 다시 본회사에서 임대료를 내고 빌려 쓰는 방식으로 실질적 지배는 유지하면서 자금을 가족 계열로 이전시키는 행위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 경우 회사의 재산은 축소되고 소액주주·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는 실질적 손해를 입게 된다. 

전형적 패턴은 다음과 같다. 우선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친인척 명의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거나 이미 보유한 개인회사에 회사의 핵심 기술·부동산·지적재산권을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한다. 

그 다음 매각으로 유입된 자금은 사실상 대주주 일가의 통제 하에 남아있고, 본회사는 당장 그 자산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되사거나 임차한다. 

아울러 세제·회계 처리를 통해 매각 이익은 개인(혹은 가족 회사)에게 귀속되고, 장기적으로는 자산 유출로 회사의 경쟁력·가치가 저하된다. 형사 책임 규정이 약화되면 이런 편법적 전환의 억제력이 떨어진다. 

과거 대기업 총수 일가가 계열사에 부당 지원을 하거나, 회사 자산을 사익 편취에 활용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사례는 적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한진해운, 일부 재벌그룹의 계열사 지원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회사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가 쟁점이 됐다. 배임죄가 없었다면 이들 사건 상당수는 법적 제재 없이 넘어갔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제도적 부담을 완화하는 것과,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배임죄 폐지는 소액 주주와 노동자, 더 나아가 사회적 신뢰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경영상 판단의 여지를 인정해 배임죄 무죄가 선고된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

법적 문제도 쟁점이다. 내부 거래와 부당 지원 등 이미 문제가 된 행위들이 제재 장치 없이 노골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임죄 폐지 논의에 앞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이해관계자 보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유럽 등 주요국은 형사 기소의 범위와 경제적 제재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 왔다. 일부 선진 사례는 형사 처벌을 완화하는 대신 강력한 민사구제·공시·이사 책임보험·독립 감사 시스템을 강화해 투명성을 확보한다.

김효은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배임죄는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기업의 투명성을 담보하며 자유시장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라면서 “이 죄가 사라지면 소액주주는 보호받지 못하고, 기업 신뢰는 흔들리며 국가의 부패 위험은 커진다”고 비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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