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규제 완화로 31조 여력 확보
국민연금 투자가 외압 때문이라고?
노후자금 위협 주장은 과잉적 반응

18일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8일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민성장펀드 출범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금융위원회가 은행권 자본 규제를 완화하며 민간 자금의 투자 여력을 넓히는 가운데 국민연금도 주식 비중 확대 가능성이 제기되자 정치권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은행권은 금융위의 위험가중치 완화 조치로 주식 투자 여력을 크게 늘렸다. 자기자본비율(BIS) 규제 하에서 벤처·비상장 주식에 부과되던 400% 위험가중치(RWA)가 250%로 낮아지면서 약 31조6000억원의 추가 투자 여력이 확보됐다. 이날 출범한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 펀드와 맞물려 민간 금융권의 투자 기회를 동시에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변화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통적으로 연기금의 주식 투자 확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유지해 왔다. ‘노후자금 안정성’을 강조하며 주식 비중 확대를 위험 요소로 규정해 온 것이다. 금융위가 은행권 규제를 완화해 주식·벤처투자 여력을 넓히는 등 제도적 전환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현실과 괴리를 보이는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연금 투입 가능성에 대해 “노후자금을 정권 홍보에 끌어다 쓰려는 외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는 강제 출자도 사전 협의도 없다는 것이 정부와 연기금의 일관된 설명이지만, 최 의원은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 간 주식시장 밸류업 경쟁 속에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정상적 운용 행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기금은 본질적으로 가입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하지만, 자본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운용 전략을 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모두 공식적으로 “강제 출자나 사전 협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보고서상 투자 구조가 제시되긴 했지만, 이는 연기금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것일 뿐 사전 할당이나 의무 부과는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국민성장펀드를 설계하면서 정부 재정을 후순위로 투입하고, 민간과 연기금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적 인센티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는 ‘정책적 유도’이지 ‘정치적 강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에 최 의원의 문제제기는 정책의 본질을 왜곡하는 정치적 액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규제 완화에 따라 투자 여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만 국내 주식을 늘리면 안 된다는 논리는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는 첨단 전략산업, 벤처·기술기업, 지역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연기금이 여기에 참여한다면 단순히 정권의 홍보 수단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자산 가격 왜곡을 불러올 수 있어 문제가 되지만, 시중은행이나 연기금이 운용 전략을 조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투자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의 과잉 프레임은 이재명 정부의 주가 부양 만능론만큼이나 정책 논의를 왜곡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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