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비율 관리에 밀린 기업대출
RWA 규제가 은행 전략 좌우
실물 자금 유도엔 제도 보완 필요

은행이 ‘손쉬운’ 대출에만 몰린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기업 투자 자금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자산 운용 흐름을 봐도 이자이익 중심의 전략 아래 주택담보대출 쏠림이 뚜렷하다. 가계대출 증가분 대부분이 주담대에서 발생했고 전체 가계대출 중 주담대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증가 폭이 미미하고 연체율도 주담대보다 3배가량 높다.
은행 입장에서 ‘수익이 나고 리스크가 낮은’ 곳에 자금이 몰리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담보가 확실한 주택대출은 자본을 적게 소모하고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중기·벤처 대출은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한다. 같은 대출이라도 자본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선 담보 중심 대출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은행은 자산 운용 시 각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적용받으며 이에 따라 요구되는 자기자본 규모도 달라진다. 이때 각 자산에 부여되는 위험가중치는 ‘위험가중자산(RWA)’을 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RWA 규모는 곧 은행의 자본비율 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자산에 얼마만큼의 자본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금융회사의 전략과 포트폴리오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물경제로 자금을 유도하려면 자본비용이 설정되는 기준부터 손질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주요 금융지주들의 상반기 실적을 보면 공통적으로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끌어올린 흐름이 뚜렷하다. 환율 하락이나 외화 자산 축소, 유가증권 포지션 조정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됐지만 그 핵심은 RWA 관리였다. 자본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 자산 구성의 실질 변화보다는 회계상 지표 조정에 가까운 흐름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이 현실화되려면 먼저 자본비용 산정 기준부터 조정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최근 주담대의 위험가중치를 높이고 정책펀드나 벤처투자 관련 항목의 가중치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 중심의 정책펀드 조성과 민간 금융 매칭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실제 민간 참여를 유도하려면 대출 부담을 줄이는 방식의 RWA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유인이 현장에선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간 금융기관 입장에선 정책금융 중심의 기금이 자본효율성이 낮은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다. CET1 비율을 중심으로 한 자본적정성 관리 틀 안에선 기업대출 확대가 경영성과로 직결되기 어렵다. 회계와 감독 체계가 자산의 ‘안정성’에 방점을 찍는 한, 산업을 키우는 금융보다 지표를 관리하는 금융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금융회사의 전략을 바꾸기보다는 제도적 유인 구조를 조정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예컨대 국가 전략산업과 연계된 대출이나 일정 조건을 충족한 기업대출에 대해선 위험가중치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 녹색금융, 혁신기업 대출 등에서 일부 국가가 채택한 차등적 RWA 기준도 참고할 만하다.
RWA는 자본비용을 결정하는 기준이자 금융회사의 자산운용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다. 항목별 자본요건에 따라 자산 배분과 경영 전략이 달라지는 만큼 실물경제로의 자금 흐름을 유도하려면 위험계산 방식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