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적합 질환군 축소···전공 교수 이탈 불가피
지방 2차 병원 역량 부족, 환자 의료 공백 우려
수익성 낮은 중증·응급 집중 지방병원 경영난

경북에서 만성 기도질환을 앓고 있는 한 70대 환자는 최근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부가 새로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 따라 ‘비적합 질환군’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지역의 2차 병원은 호흡기 내과 전문 진료를 소화하기 힘들고 수도권까지 올라가려면 왕복 다섯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의도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가 오히려 지방 환자에게는 새로운 장벽으로 다가온 셈이다.
신경철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호흡기·알레르기내과)가 대한의학회 E-NEWSLETTER 최근호에 기고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 지역의료에 긍정적인가?'에서 이같이 밝혔다.
1일 여성경제신문이 내용을 종합하면 핵심은 적합 질환군 비율을 7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이다. 이에 따라 천식·COPD·폐렴·결핵 같은 일부 만성질환과 종양 이외의 분야는 축소가 불가피하고 전공 교수 이탈과 전문 인력 양성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 교육과 연구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밀려난 환자를 받아줄 2차 병원도 충분치 않다. 수도권은 대학병원 외에도 대형 종합병원이 층위를 받쳐주지만 지방은 전문병원 위주라 복합질환 환자를 다루기 어렵다. 때문에 2차 병원이 3차 진료를 대신하거나, 반대로 3차 병원이 2차 환자를 떠안는 역전 현상도 나타난다. 정책이 수도권 설계 기준으로 일률 적용되면 지방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을 길은 더 좁아진다.
재정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구조 전환 후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희귀·응급질환에 집중하면 수익성은 크게 떨어진다. 암 진료만이 재정에 보탬이 되지만 나머지 영역은 인력과 장비 투입에 비해 수익이 거의 없다. 인구가 감소하고 외부 환자 유입이 없는 지방에서는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사립대병원이 많은 지방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병상 규제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병상을 3년간 10조 원 규모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수도권 병원은 일반 병상을 10~15% 감축하지만 지방은 5%만 줄이는 대신 병상 확장이 사실상 금지됐다. 문제는 기능하지 않는 병상까지 수치에 포함되면서 신규 개원과 지역 포괄 2차 병원 육성까지 막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환자의 수도권 집중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의과대학 A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사업이 너무 짧은 기간에 추진돼 비바이탈 분야와 전공 위축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일괄적 병상 감축은 공공의료 기능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응급실 과부하, 공공의료 약화, 지역 환자 소외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맞춰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을 3년간 2조 원 규모로 병행하고 있다. 다만 지역 의료 역량이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 개편만으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