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 1위 우회 경로로 활용
‘생산만 하는 회사’ 한계 사전 차단 불가
공급망 투명성 압박 커져 韓 기업 긴장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카드는 물론 스마트폰 칩까지 전세계 파운더리 반도체 물량의 70%가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DB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카드는 물론 스마트폰 칩까지 전세계 파운더리 반도체 물량의 70%가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DB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허브인 대만 TSMC가 미중 반도체 전쟁의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정부가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TSMC를 경유한 반도체가 중국 시장에 흘러들어가는 정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는 2022년부터 엔비디아의 A100·H100 등 고성능 GPU를 중국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해왔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직접 칩을 수입하는 대신 AI 반도체 설계를 외부 팹리스 업체에 위탁해 TSMC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 1위다. 삼성전자나 인텔 같은 경쟁사가 일부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첨단 5나노 이하 공정은 사실상 TSMC 독점 구도다. 따라서 미국의 제재 정책이 아무리 강력해도 TSMC가 맡은 물량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순간 규제의 실효성은 반감된다.

문제는 TSMC 자체가 ‘꼼수’를 잡아낼 실질적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파운드리는 고객사의 주문대로 생산만 하는 구조라 최종 수요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어렵다. 특히 다단계 서브컨트랙트가 얽혀 있는 반도체 공급망에서는 특정 칩이 중국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뒤에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상무부가 특정 AI칩의 중국 유입을 적발했을 때도, 원 발주처는 동남아 법인이었고 생산지는 대만 TSMC였다. 발주 구조상 TSMC가 사전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미국이 제재망을 강화해도 반도체 공급망의 구조적 복잡성이 ‘구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 미국산 GPU가 막히자, 중국 기업들은 ‘중저가형 AI칩’이라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성능이 다소 낮아도, 클라우드·빅데이터 센터에서 병렬 연결하면 AI 학습은 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중국 수요가 차단되지 않고, 오히려 우회 경로를 통해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알고 있다. 최근 상무부는 ‘중국 관련 의심 발주’를 걸러내기 위해 TSMC 등 주요 파운드리에 사전 신고 절차를 강화하고, 미국 기업과의 협업 구조를 더 면밀히 검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100% 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크다.

국내 기업들에게도 이는 ‘이중 리스크’다. 중국은 여전히 최대 수출 시장이지만 미국의 규제는 사실상 글로벌 스탠다드처럼 작동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의 친중 메시지가 미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미국 정보당국이 중국산 칩을 입수해 분해했을 때 한국 팹리스 설계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재의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핵심은 공급망의 ‘투명성’이다. 미국은 TSMC에 더 강한 의무를 부과하려 할 것이고, TSMC는 ‘생산만 하는 회사’라는 기존 역할 정의를 넘어선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전쟁의 구멍이 된 TSMC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압박 구도는 당분간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남을 전망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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