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성장엔진 외치지만 생활 격차 고착
사각지대 외면하면 열매는 편중된다

올해 2분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5.45배로 확대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2분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5.45배로 확대됐다. /게티이미지뱅크

“AI 구독료가 한 달에 3만원이라는데 아이가 둘이면 6만원이 고정으로 빠집니다. 생활비에 대출이자까지 감당하는 집엔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에요.”

인공지능(AI) 서비스는 이미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학습, 금융, 의료 상담까지 몇 번의 클릭으로 접근할 수 있다. 구독료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다자녀 가구나 저소득층에는 분명한 장벽이다. 정부는 AI를 성장의 씨앗으로 내세우며 내년 관련 예산을 10조원 이상으로 늘렸지만 이런 사각지대를 메울 로드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발표한 2026년 예산안은 총지출 728조원에 달한다. 그중 간판 사업은 AI다. AI·AX 대학원을 24개로 확대해 고급 인재 1만1000명을 양성하고 GPU 1만5000장을 추가 구매하며, 제조업 전반의 ‘피지컬 AI’ 전환을 지원한다. 재정을 씨앗처럼 뿌려 미래 성장을 일구겠다는 구상이다. 투자 방향의 당위성은 분명하지만 정작 AI가 계층별로 어떻게 쓰이게 될지에 대한 세밀한 고민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통계는 현실을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5.45배로 확대됐다. 지난해 처음 발표한 ‘소득이동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소득 이동성은 34.9%였다. 소득 이동성이란 한 가구가 1년 사이에 자신이 속한 소득 계층에서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간 비율을 뜻한다. 나머지 65.1%는 전년과 같은 계층에 머물렀다는 의미다. 2019년 35.8%, 2020년 35.0%에서 2년 연속 떨어진 수치로 노력해도 계층 사다리를 오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서비스의 월 구독료는 지금은 2만9000원 선이지만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 1층 사다리부터 이미 부담스러운 가정이라면 앞으로 높아지는 사다리에는 더욱 발을 올리기 어려워진다. 지금 대책이 없다면 기술 발전이 곧 불평등의 가속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미성년자 증여세 결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0살 신생아 734명이 평균 약 9141만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증여 재산가액은 671억원으로, 2020년 91억원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만에 7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금융자산, 유가증권, 토지, 건물까지 유형도 다양했다. 태어나자마자 1억원 가까운 자산을 가진 아동과 월 2만9000원의 AI 구독료조차 부담스러운 아동 사이의 격차는 결국 사회 이동성을 가로막는 벽으로 작동한다.

정치권에서는 저소득층과 청소년의 AI 구독료를 보조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다. 일각에서는 굳이 세금으로 이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박도 나온다. AI 구독료는 월 2만9000원 수준으로 외식 한 번 줄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인데 이를 국가가 대신 내주는 것은 과잉 복지라는 주장이다. 격차는 원래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세금으로 메워줄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집에는 외식비 한 번이지만, 다른 집에는 생활비에 대출이자를 더한 끝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정 비용이다. 통계청 자료가 보여주듯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5배가 넘고 사회 이동성 비율도 내려앉았다. 지금의 2만9000원이 사다리의 첫 단이라면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그 사다리는 더 비싸지고 더 높아질 것이다. 결국 AI 접근성 문제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미래 기회와 직결된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는 성장의 엔진이 아니라 불평등의 가속기가 될 수 있다.

AI 시대의 성장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성장이 불평등을 키운다면 이는 결국 모두의 실패가 될 수 있다. 자유시장 질서는 경쟁을 통한 기회 균등을 전제로 하지만, AI 접근성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AI 시대의 시장 활력을 유지하려면 계층 간 격차를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격차가 고착화되면 인재 발굴의 기회가 줄고 사회 전체의 성장 기반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AI를 국가 성장의 엔진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화려한 청사진 뒤에 가려진 사각지대를 점검해야 한다. 기업 투자 확대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배제되는지 묻지 않는다면 성장의 토대는 금세 흔들릴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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