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단독주택을 어떻게 설계해야 아파트와 다를까
고인 물 같은 아파트를 샘솟는 물로 바꾸려면
솟아나는 샘물처럼 생기가 넘치는 단독주택
아파트에 살면 할 수 없는 생활을 단독주택에서는 일상에서 누릴 수 있어야 집을 짓고 살 명분이 된다. 아파트에는 없지만 단독주택은 마당이 있다고 하는 건 그런 명분으로 부족하다. 한여름에 잡초를 뽑느라 땀 좀 흘려본 사람은 마당 자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당 관리 때문에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마당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많을수록 단독주택을 지은 보람과 함께 하루하루 지내는 일상이 즐거울 것이다. 부부가 도심을 벗어나 단독주택에서 살면서 마당에서 누릴 즐거움이 없으면 후회할 시간은 금방 찾아오고 말 터이다. 집을 설계하면서 아파트처럼 현관으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올 필요 없이 집 안에서 일상생활이 다 해결되는 집은 아파트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지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마당은 잔디를 관리해야 할 일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단독주택을 어떻게 설계해야 아파트와 다를까?
단독주택과 아파트는 무엇이 다른가? 단독주택을 아파트와 다른 집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 단독주택에서 살면 아파트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가? ‘단독주택’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이런 화두를 계속 참구해 가며 설계를 해오고 있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굳이 다르게 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단언컨대 단독주택은 그 얼개에서 아파트와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아파트는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는 집이다. 단독주택은 집 안 공간과 바깥 공간이 하나의 영역으로 소통하는 집이다. 이런 얼개로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른 집이 될지 느낌이 오지 않은가?


이런 아파트와 다른 단독주택 얼개의 근원을 우리나라 전통가옥인 한옥에서 찾았다. 한옥은 현관이 없고 집 안의 어느 공간에서도 밖으로 드나들게 되어 있다. 방마다 툇마루를 통해 밖으로 출입하니 집 안이라는 표현은 담으로 둘러싼 영역 전부를 아우른다. 그러니 건물은 집터의 가운데 앉히고 외부 공간은 내부 공간과 하나의 영역이 된다.
거실이 중심이 되어 방이 부속된 아파트와 내부 공간의 각 실이 독립적인 자기 영역을 가지고 외부 공간이 부속된 한옥은 전혀 다른 쓰임새를 가진다. 한옥의 마당은 건물을 가운데 두고 나누어져서 내부 공간과 연계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옥의 얼개를 단독주택에 적용하면 불통의 아파트와 다른 소통하는 집이 된다.
고인 물 같은 아파트에서도 샘솟는 물로 바꿀 수 있는데
주거 환경의 분위기를 물에 비유하면 아파트는 고인 물이다. 발코니마저 없앤 아파트는 내부 공간밖에 없으니 집 안 분위기는 생동감을 가질 수 없다. 거실도 일자 소파가 TV를 향하고 있으니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아니다. 소파에 앉거나 누워 TV를 보는 일밖에 할 일이 따로 없다.
부모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은 방에 갇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부만 사는 집이라 해도 아내나 남편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다른 한 편은 또 어떤 일을 하나? 거실에 TV와 일자 소파를 들어내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생동감 있는 생활을 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집에서 TV를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거실의 TV를 다른 방에 설치하거나 아예 없애고 생활하는 집이 간혹 있을 것이다. 거실 벽면에는 TV 대신 서가를 두고 소파를 두거나 아예 테이블을 놓는 집도 있다. TV가 거실에서 사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테이블을 놓은 집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또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부부나 가족들이 대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신축 아파트보다 발코니가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인 아파트에서 발코니는 최소한의 외부 공간이 된다. 발코니 폭을 1.8m까지 허용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아파트는 작은 마당을 가졌다고 해도 좋았다. 아파트 너비만큼 길이를 가진 발코니는 정원도 되고 장독대를 가진 마당처럼 쓰기도 하니 주어진 여건과 쓰는 사람이 집을 다르게 만든다.
솟아나는 샘물처럼 생기 넘치는 단독주택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연령대는 보통 일에서 은퇴하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아파트에서는 무료하기 짝이 없으니 집 밖을 배회하게 될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 지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만날 사람이 귀한 이 시대에 그게 쉬운 일일까? 그렇지만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에서는 심심할 겨를 없이 지낼 수 있다.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는 집’이라는 명제로 집의 얼개를 구성하여야 한다. 옛날 한옥을 살펴보면 집 안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고 살았지만 마당과 연계된 다양한 기능 공간을 가지고 있다. 거실과 마당은 사랑채와 사랑마당, 테이블과 데크는 대청마루와 안마당, 주방과 뒷마당은 정지와 정지마당, 서재와 작은 정원은 별채와 정원 등으로 한옥과 우리집을 병치하면 생동감 넘치는 일상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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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현관 없이 실내 어느 방에서도 마루나 툇마루를 통해 드나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 단독주택의 뿌리를 한옥이라 보면 일 층의 개별 방에서도 외부 공간과 하나의 영역으로 구성하면 일상생활의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진다. 거실 영역을 구성하면서 거실과 마당, 테이블과 덱, 주방과 뒷마당을 연계하면 어떤 일상이 펼쳐지게 될까? 뒷마당을 넉넉하게 두어 텃밭, 장독대와 작업 공간이 있으면 집에서 할 일이 다양해질 것이다.
일층에 서재와 손님방을 두고 방과 하나 되는 정원을 꾸며보자. 손님이 잠을 이루지 못하면 방에서 정원으로 나가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과 달, 아파트에서는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밤하늘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서재는 혼자 쓰는 방이라서 밤에 나 홀로 삶을 관조하는 공간이다. 밖으로 난 방문을 열어두고 정원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보름밤에는 달빛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는 걸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파트는 젊을 때는 생활하기에 편리한 집이지만 훗날 가족들이 돌아보며 반추할 거리가 없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지만 어릴 때 집에서 지냈던 시간을 떠올릴 게 어떤 일이 있을까? 아파트는 어떤 사람, 어떤 가족에게도 숙소에 지나지 않은 집일 뿐이지 않을까? 사람도 연어처럼 회귀본능이 있지만 우리집에 대한 추억, 되새기며 돌아볼 가족들과 함께했던 기억이 없으니 자식들은 부모를 잘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독주택의 얼개를 한옥처럼 일 층에서는 실내와 마당을 하나의 영역으로 두고 설계해 보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유전자에 한옥에서 살았던 기억이 들어 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할 집, 한옥의 얼개를 가진 단독주택이라면 가족들의 귀가 본능을 일깨워 줄 것이다. 아파트에 살아서 기억할 만한 지난 추억이 없다고 해도 한옥에서 찾아낸 집의 요소를 많이 반영해서 설계한 단독주택은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집이 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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