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건축사가 하는 설계는 건물-House가 아닌 가정-Home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게 되는 노후의 삶을 담아야 하는 집  
입주 일 년 뒤에 관계자를 초대해서 집들이 자리를 가지면

며칠 전 건축박람회를 다녀오면서 건축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암울한 느낌이 밀려왔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한계로 참여 업체는 많지 않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부스는 단독주택 전문 시공회사였다. 업체는 세 군데였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부스는 관람객의 시선을 끌 만했다. 다양한 외관을 가진 단독주택 투시도와 도면으로 대형 화면을 만들어 부스를 구성하고 있었다.   

수십 채의 평면도와 외관을 보고 고르면 되니까 건축사를 찾아 번거로운 설계 과정 없이 진행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집을 지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하는 말이 ‘다시 집을 지으면 성을 간다’고 할 만큼 집 짓기는 힘든 일이니까. 그렇지만 단독주택은 기성품이 아니라 맞춤으로 지어야 하는 ‘우리집’이다. 그런데 건축박람회의 단독주택 시공업체 부스에서 우리집을 짓는 상담을 하고 진행한다면 기성품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건축사가 하는 설계는 건물-House가 아니라 가정-Home이라는 집    

집은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 일이다. 집을 만든다고 하면 ‘어떤 집’이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관에 치중하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짓는다는 의미는 만드는 과정 앞에 ‘마음을 담아’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밥, 옷, 집과 함께 글, 약 등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는 말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도, 옷도 돈을 주고 사는 세상인데 집이라고 다르겠느냐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을 짓는 건 ‘우리 식구들만의 보금자리’를 꿈꾸는 이유일 것이다. 아파트라는 기성품 집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보편치를 담아 누구나 편히 지낼 수 있는 건 틀림없을 것이다. 또 부동산으로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투자의 매리트를 더 평가하는 게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식구라는 의미를 잃게 되었다고 하면 나만의 과언일까?     

건축박람회 전시장, 단독주택 전문 시공사 부스를 찾아 상담해서 우리집을 지을 수 있겠지만 건축사의 역할은 배제될 터이니 아마도 그렇게 짓는 집은 기성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정관
건축박람회 전시장, 단독주택 전문 시공사 부스를 찾아 상담해서 우리집을 지을 수 있겠지만 건축사의 역할은 배제될 터이니 아마도 그렇게 짓는 집은 기성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정관

집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이라고 정의하는 말에 공감한다면 아파트는 ‘더 이상 밖에서 머물 수 없어 자러 오는 곳’이라고 하면 어떨까? 아파트 단지의 밤 풍경이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지지 않은 세대가 자꾸 느는 걸 보고 하는 말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으로써 집이라면 일이 마쳐지는 대로 서둘러 돌아와서 식구들과 지내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머물 데가 없어 자러 오는 집'은 숙소에 불과하니 그곳에는 한집에서 지내는 가족이 있을 뿐이다.     

단독주택은 대부분 은퇴를 준비하거나 노후를 보내려는 연령대에서 짓는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거나 대부분이라면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 할까? 아파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일상생활은 고인 물과 같아진다. 단독주택은 어떻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설계도로 지으면 샘솟는 물처럼 활기가 넘치는 집이 될 것이다. 단독주택은 고인 물-House가 아닌 샘솟는 물-Home으로 지어야 하니 설계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일상생활을 집에서 지내게 되는 노후의 삶을 담아야 하는 집     

집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돌아보면 아파트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주말과 휴일에 집에 있어 보면 소파에 앉아 TV 보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무료하기 짝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남의 집에 갈 수도 없는 게 아파트인지라 할 일 없이 지내는 노후가 외로울 건 자명하다. 몸은 바빠야 하고 마음은 한가로이 지내는 게 좋으니 당호를 심한재(心閑齋)로 짓고 집터를 십 년 걸려 찾아서 지은 집이 있다.     

건축주는 대학교수로 정년을 십 년 정도 남겨두고 집을 짓기로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건축주는 출퇴근이 가능한 곳을 찾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출근하는데 30분 거리에 집터를 구했다. 10분만 걸으면 강변에 닿는 산자락에 집터를 닦아 놓은 배산임수로 집을 앉힐 좋은 땅이었다. 학교생활에 바쁜지라 설계와 공사를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야말로 열쇠만 받아 입주할 생각이었다.  

단독주택 설계는 건축주와 설계자가 설계 기간을 넉넉하게 두고 우리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한다. /김정관
단독주택 설계는 건축주와 설계자가 설계 기간을 넉넉하게 두고 우리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한다. /김정관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소재 단독주택 심한재 투시도, 거실채와 침실채가 채 나눔 되어 손님이 찾아오고, 1층은 방마다 툇마루로 마당에 드나들 수 있는 이 시대의 한옥으로 지었다. /김정관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소재 단독주택 심한재 투시도, 거실채와 침실채가 채 나눔 되어 손님이 찾아오고, 1층은 방마다 툇마루로 마당에 드나들 수 있는 이 시대의 한옥으로 지었다. /김정관
심한재 1층 평면 및 배치도.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 얼개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외부 공간이 샘 솟듯이 활기가 넘치는 일상생활을 누리게 한다. /김정관
심한재 1층 평면 및 배치도.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 얼개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외부 공간이 샘 솟듯이 활기가 넘치는 일상생활을 누리게 한다. /김정관
집의 골조를 중목조로 지으면 시공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고 설계에 들인 정성을 그대로 시공 과정에 담아낼 수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 /김정관
집의 골조를 중목조로 지으면 시공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고 설계에 들인 정성을 그대로 시공 과정에 담아낼 수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 /김정관

그렇지만 전문가라 할지라도 부부의 노후와 자식들과 손주가 함께 지낼 집을 무작정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건축주는 설계 기간을 충분하게 잡아 건축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계획안을 오래 다듬었다. 건축주는 계획안을 보면서 집에서 가족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는지 확신이 올 때까지 설계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더 이상 나눌 얘기가 끊어지면서 계획안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나머지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도 되는 일정으로 남았다.  

집을 짓는 구조는 철근콘크리트가 아니라 중목으로 건축주가 선택했다. 중목구조로 지으면 기술자의 질이나 현장의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조를 형성하는 주요 부재는 일본 공장에서 제작해서 현장에서 조립하고 나머지 공정도 전문 작업자가 맡아 집을 짓는다. 현장에서 변경될 여지 없이 설계도대로 지어지므로 건축주는 시공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다녀가면서 집이 완성되었다.

입주하고 일 년 뒤에 관계자를 초대해서 집들이 자리를 가지면   

건축주는 심한재에 입주하고 나서 조경 공사를 손수 하느라 일 년이 지나서야 설계자와 시공자를 집들이 자리에 초대했다. 공사 기간보다 설계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써서 충분히 협의가 되었지만 건축주가 한 해를 살아본 뒤에 가지는 집들이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마음이 쓰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심한재에 들어서면서 덱에 그득하게 차려진 상차림을 보면서 긴장했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집에 관해 고마운 마음을 담은 건축주의 밥상은 건축사로서 받을 수 있는 어떤 상(賞)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심한재에서 한 해 동안 지낸 일상의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입주를 하고 한 달 뒤에 아들의 입대가 예정되어 주말에 친구들과 거실에서 밤새 파티를 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거실은 지난밤 일어났던 일이 눈에 선했는데 엄마 아빠는 밤새 곤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니. 사랑채 개념의 거실이 손님맞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아파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아닌가? 

단독주택 심한재 전경. 경사 지붕과 처마는 집의 유지 관리에 힘을 들이지 않게 한다. 거실채와 침실채, 1층의 내부 공간과 마당이 하나의 공간으로 쓰게 되므로 우리집의 일상생활은 활기가 넘친다. /김정관
단독주택 심한재 전경. 경사 지붕과 처마는 집의 유지 관리에 힘을 들이지 않게 한다. 거실채와 침실채, 1층의 내부 공간과 마당이 하나의 공간으로 쓰게 되므로 우리집의 일상생활은 활기가 넘친다. /김정관
심한재를 지으면서 뜻을 모은 설계·시공 관계자를 건축주께서 초대한 집들이 자리. 건축주께서 차린 밥상은 어떤 건축상보다 더 큰 상이었다고 여겨도 좋겠다. /김정관
심한재를 지으면서 뜻을 모은 설계·시공 관계자를 건축주께서 초대한 집들이 자리. 건축주께서 차린 밥상은 어떤 건축상보다 더 큰 상이었다고 여겨도 좋겠다. /김정관

건축주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봄이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전통 구들을 들인 한실 서재에서 겨울을 나고는 난치병이었던 알레르기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서재는 툇마루로 연못이 있는 작은 정원에 나갈 수 있으니 한옥에 사는 듯한 운치가 있다고 했다. 심한재라는 당호에 어울리는 공간 얼개가 건축주의 삶에 어우러지고 있었다.     

마당을 줄여 뒤뜰을 여유 있게 두었는데 텃밭에서 온갖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여 풍성한 식탁이 차려진다고 한다. 심한재는 집 안은 물론이고 마당과 뒤뜰, 정원과 덱까지 다양한 외부 공간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다. 한옥을 바탕으로 설계 작업을 이어온 나의 단독주택 철학이 심한재에서 만개한 듯 벅차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와 얘기를 나눈 ‘어떻게 살 집’을 구상한 결과는 대만족인 셈이었다.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분들은 건축사와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좋겠다. 시공사가 제시하는 투시도와 평면도를 골라 집을 짓는다면 기성품 집이 되고 마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렇게 집을 지어 사는 결과는 아파트보다 못한 일상을 보내며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공자가 제시하는 집은 ‘어떤 집’이라면 건축사와 설계 과정을 가지는 집은 ‘어떻게 살 집’이다.    

심한재는 건축주께서 당호를 지어두고 노후에 지낼 집을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집터를 구했다. 건축주는 십 년 노력으로 어렵사리 집터를 찾은 만큼 건축사도 동료 교수의 추천을 받아 찾아왔다. 집을 짓는데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분이라 건축주와 건축사의 역할에 충실한 대화로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집들이 자리의 말미에 건축주의 설계와 시공 담당 직원에게 금일봉과 함께 전한 고맙다는 말씀은 집짓기의 금상첨화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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