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광란의 '토 파티'도 견디게 하는 질주극

21세기 현대인은 매일 수많은 콘텐츠를 스쳐 지나간다. 그중 어떤 장면은 뜻밖에 발길을 붙잡고,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편한숏’은 그 순간에 주목한다. 이야기 속에서 장면이 품은 감정과 맥락을 읽어낸다. 영화, 드라마, OTT 등 서사가 있는 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화면 속 짧은 순간을 통해 지금 이 시대와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을 함께 들여다본다.[편집자주] 

영화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슬픔의 삼각형’이 보여주는 권력은 위엄과 거리가 멀다. 과장되고 유치하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영화는 날 것의 방식으로 그 민낯을 들춰낸다. 메스꺼움을 유발할 정도로 노골적이지만 그 노골성 덕분에 통쾌하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루벤 외스틀룬드(Ruben Ostlund)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는 패션모델 커플이 초호화 유람선에 초대되면서 시작된다. 부유한 손님들과 하층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 공간은 상류사회에 대한 풍자를 넘어 권력이 어떻게 인간 사이에서 작동하고 순환하는지를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영화는 패션계, 배, 섬의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 전개된다.

크루즈에서 유유자적 물놀이를 즐기던 부자는 규정상 근무 중엔 수영을 할 수 없는 직원에게 수영장에 들어오라고 권한다. 제안이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이다. 정작 직원이 물에 들어오기를 거절하자 '이 순간을 즐기라'며 언성을 높인다. 그는 수영을 제안하며 '친구', '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권력 구조 아래에 있는 이들이 쓸 수 없는 이 단어를 그는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 점이야말로 그가 권력을 쥐고 있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다.

한 부부는 수류탄을 팔아 부를 쌓았다. 남편은 자신의 사업 아이템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말하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부부는 규제 강화로 인해 한때 손실을 겪었다며 그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고 회고하며 마치 커다란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그들의 삶은 전쟁으로 파괴된 누군가의 일상 위에 세워진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쟁이 자본의 연료가 되는 세계에서 그들이 판매한 수류탄은 끝내 자신이 탄 배를 향해 날아든다.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셈이다.

배가 난파되고 조난을 당한 이들은 섬에서 새로운 권력의 질서를 마주하게 된다. 돈과 명품은 쓸모가 없어지고 불을 지피고 사냥하는 능력이 곧 권력이 된다. 애비게일은 배에서 화장실 담당 직원이었지만 생존 기술을 가진 유일한 인물로 권력의 자리에 선다. 공간이 바뀌자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즉시 권력자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섬 밖에서 권력을 쥐었던 이들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 섬에서 나가면 보답할 것을 약속한다. 현재의 권력 구조를 표면적으로는 인정하지만 결국엔 과거 질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는 태도다. 지금은 당신이 위지만 원래 내가 위였고 곧 다시 그렇게 될 거라는 무의식을 보여준다.

‘슬픔의 삼각형’은 복잡한 해석을 유도하지 않는다. 상징과 은유를 즐기면서도 정작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노골적이고 직선적이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영화를 미로가 아닌 활주로 위에 올려놓는다. 관객의 해석력을 시험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정확히 짚어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이 작품이 '칸'이라는 무대에서 상영됐을 장면을 떠올리면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광란의 '토 파티'에 비위가 상해도 이 후련한 돌직구 덕분에 다시 꺼내보게 되는 작품이다.

※ 이 글은 기자 개인의 해석과 감상을 담은 칼럼입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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