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로 다가오지 않는 '선'에 대한 이야기
선한 것이 이기는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힘

21세기 현대인은 매일 수많은 콘텐츠를 스쳐 지나간다. 그중 어떤 장면은 뜻밖에 발길을 붙잡고,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편한숏’은 그 순간에 주목한다. 이야기 속에서 장면이 품은 감정과 맥락을 읽어낸다. 영화, 드라마, OTT 등 서사가 있는 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화면 속 짧은 순간을 통해 지금 이 시대와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을 함께 들여다본다.[편집자주]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6화 스틸컷 /JTBC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6화 스틸컷 /JTBC

요즘 많은 콘텐츠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추악하다” 또는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는 명제가 유행처럼 소비된다.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지키는 사람의 가치를 다시 묻는다. 선은 결국 구원받고, 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오래된 진리를 정면에서 되새긴다. 선의가 악을 이기는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해숙은 천국에서의 생활 중 일련의 문제들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은 단순한 형벌의 공간이 아니라 죄의 성격에 따라 분류되고 체계화된 세계다. 발설지옥, 초열지옥, 화탕지옥 등 각기 다른 지옥들이 존재하며 연쇄살인범에게는 ‘지옥 풀세트’가 부여되기도 한다.

오늘날 ‘죄’는 어디까지를 포함할까. 어디까지가 죄고, 어디부터가 아닌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드라마 속 지옥은 죄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분명한 처벌을 내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엇이 죄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남을 외면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면 마음에 죄가 남았고 그것은 일종의 윤리적 책임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때때로 무모하다는 인식을 만든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책임을 지게 되거나 피해를 입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사회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위도 못 챙긴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런 사회에서 선의는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밀려난다. 문제는 이 감각이 개인의 태도를 넘어서 제도 전반에 스며든다는 점이다. 물론 시스템의 책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결국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악을 단속하는 건 법이지만, 그 생태계를 바꾸는 힘은 선을 지키는 개인들의 지속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 드라마는 그 지점을 묻는다. 지금도 선하게 산다는 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손해 보는 일일까.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선은 참 힙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즐겨 쓰지도 않는 단어인데 유독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그 말이 떠오른다. (영애의 스타일링 때문일지도) 힙하다는 건 결국 새롭고 개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의 선한 인물들은 그런 식이다. 해숙은 마뜩찮은 사람에게도 냉장고 반찬을 내어주고, 손님은 그저 편히 있다가 떠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해숙은 마냥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다. 갈 곳 없는 이를 내쫓지는 않지만 평생 함께 살 만큼 보드라운 사람도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선이 꼭 따뜻하고 헌신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악은 종종 단순하고 뻔하다. 선은 머뭇거리고 타협하면서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어떤 태도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악보다 선이 더 흥미롭고 더 알고 싶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이렇게 썼다.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도 다양하나,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척박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해숙을 보며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죽음을 전제로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국 삶을 이야기한다. 사후 세계라는 상상을 통해 우리가 지금 맺고 있는 관계, 그리고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작일 수도 있다는 이 드라마의 상상은 오히려 이 현생을 더 단단히 살아가게 만드는 방향을 가리킨다.

모든 배우들의 얼굴과 호흡이 이 드라마를 더 오래, 더 반짝이게 만든다. 샤기컷과 스카잔을 찰떡같이 소화하며 대체 불가한 ‘영애’로 존재하는 이정은, 천국 센터장과 염라 사이를 오가며 이 드라마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붙드는 천호진, 누군가를 이런 태도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1만 8000도의 남자’ 손석구, 짜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생명에 대한 감각을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전하는 ‘천의 얼굴’을 기대하게 하는 신민재, 그리고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다 된 것 같은 김혜자까지.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한 도파민 분비에 중독된 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쾌감보다 오래가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 김수진 

※ 이 글은 기자 개인의 해석과 감상을 담은 칼럼입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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