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보통 사람들 (Common people)'
요금제 속에서 알고리즘화 된 당신의 일상
'지불 가능한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존엄

21세기 현대인은 매일 수많은 콘텐츠를 스쳐 지나간다. 그중 어떤 장면은 뜻밖에 발길을 붙잡고,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편한숏’은 그 순간에 주목한다. 이야기 속에서 장면이 품은 감정과 맥락을 읽어낸다. 영화, 드라마, OTT 등 서사가 있는 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화면 속 짧은 순간을 통해 지금 이 시대와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을 함께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블랙미러 시즌 7 에피소드 1 보통사람들(Common People)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7 에피소드 1 보통사람들(Common People) /넷플릭스 

구독 시스템은 처음부터 모든 걸 요구하지 않는다. 처음엔 편리함을 내세우고 가격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그 편리함에 익숙해진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용자가 시스템에 적응하면 어느 날 갑자기 익숙했던 기능에 제한이 생기고 불편함이 구조적으로 삽입된다. 그 불편을 없애는 방법은 언제나 같다. 업그레이드. 더 비싼 요금제.

요즘 우리는 거의 모든 걸 구독한다. 음악, 영상, 뉴스, 심지어 감정 조절까지 대화형 시스템에 묻고 알고리즘에 맡기는 시대다. 그 과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불편을 피하고 싶으면 더 내세요"라는 말을 받아들인다. 프리미엄은 선택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을' 최소 조건이다. 돈이 없으면 기능은 줄고 감정은 제한되며 ‘하위 등급‘이 초래하는 일상의 불편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구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요받고 있다. 그 구조는 조용하고 정교해서 더 무섭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7의 첫 에피소드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은 기술이 만든 질서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존엄을 잃어가는지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아주 평범한 부부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결혼 3년차, 아이를 계획하고, 소박한 여행을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던 중 아내가 쓰러지고 진단은 뇌종양. 손쓸 수 없다는 말 앞에서 남편은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뇌를 클라우드에 복제한 뒤 손상된 부분을 제거하고 복원하는 기술. 수술은 무료지만 월 300달러의 구독료가 붙는다. 의료가 아니라 구독이다. 

기술은 기적처럼 작동한다. 아내는 다시 깨어나고, 다시 걷고, 다시 말한다. 하지만 일상은 처음과 같지 않다. 정신은 흐려지고, 집중력은 떨어지며, 대화 중간에 광고가 튀어나온다. 지역을 벗어나면 의식이 희미해지고 감정은 불안정해진다. '기본 요금제'에 해당하는 사용자에게 허용된 삶의 품질은 여기까지다. 

대화 중에 튀어나오는 광고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다. 알고리즘이 실시간 대화 내용을 분석해 상품 홍보에 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자동으로 개입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내는 사적인 대화 중에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민감할 수 있는 광고 문구를 무의식적으로 말하게 되고 이는 곧 사회적 관계의 파괴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알고리즘도 다르지 않다. 영상 몇 개만 보면 클릭하지 않아도 '봐버린 것'을 기준 삼아 관심이 있다고 판단해 원치 않는 콘텐츠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이 시스템에서 광고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광고는 흐름을 차단하고 감정을 중단시키며, 삶의 리듬 자체를 통제하는 장치다. 광고가 끝나야만 대화가 이어지고 감정이 복원된다. 마치 유튜브에서 다음 영상을 보기 위해 강제로 광고를 시청해야 하는 구조처럼 삶의 흐름조차 중간 광고 앞에서 일시 정지된다. 궁금함과 불안을 자극한 직후 사용자는 광고를 보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불편은 정교하게 설계되고 그 불편을 제거하는 방식은 언제나 요금제다.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상위 등급을 구독하는 것이다. 구독료는 점점 인상되고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요금제 안에서 기능이 제한된다. 기술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은 분류된다. 무료 체험 뒤 찾아오는 기능 제한, 광고 없는 환경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고가 요금제.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플랫폼의 논리다. 프리미엄은 더 나은 기능이 아니라 '덜 망가진 상태'를 보장해주는 가격표다. 구독료가 오르면 불만은 있지만 우리는 결국 따라간다. 그건 자율이 아니라 수용이다.

남편은 구독료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한다. 시청자들은 돈을 걸고 그에게 자해에 가까운 행동을 요구한다. 그의 고통은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시청자들은 자극에 반응하며 돈을 보낸다. 자기 파괴가 누군가에겐 구독할 만한 가치가 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지 않다. 조회수와 후원을 위해 사람들은 감정을 짜내고 사생활을 노출하며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무너지는 인간은 언제나 가장 잘 팔리는 장면이다. 남편은 '사랑'을 이유로 그 무너짐을 감내하지만 그 무너짐이 콘텐츠로 송출되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기술은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혜택은 늘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편리함은 보편으로 포장 돼 계급처럼 작동한다. 그 구조에 익숙해진 이상 시스템이 제시하는 조건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불편함은 이제 '벌'이 되었고 그 불편을 피하기 위한 대가는 상위 요금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작품 속에서 구독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는 남편에게 이 시스템이 "자신의 삶을 살게 해준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은 과연 누구의 설계일까? 인간의 손상된 신경구조는 복제되고 그 위에 시스템이 덧씌워진다. 감정, 언어, 자유의지까지 외부 설정에 종속된 상태에서 그것을 '자기 삶'이라 부르는 건 아이러니를 넘어선 착취다.

오늘날 구독 기반 시스템도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당신만의 콘텐츠", "당신의 선택", "당신이 원하는 방식" 하지만 그 모든 '당신의 것'은 이미 알고리즘과 금액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 있다. 자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 바로 그 점이 이 에피소드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보통 사람들(Common People)

감독: Ally Pankiw
작가: Charlie Brooker
주연: Rashida Jones, Christ O'Dowd

※ 이 글은 기자 개인의 해석과 감상을 담은 칼럼입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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