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과 프로필 나뉘어 적어
1963·1964년 모두 불명확
신고 늦은 시대상 반영 혼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의 정확한 생년월일이 아직까지도 가려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식 프로필에 기재된 날짜와 호적 및 주민등록상 날짜가 다른 데다 본인조차 확실한 출생일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호적상 생일인 1964년 12월 22일생으로 후보 등록했다. 전국 각 가정의 유권자는 이렇게 적힌 대로 공보물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의문점을 낳는다. 바로 아래 여동생인 이재옥 씨의 생년월일이 1965년 6월 8일임을 감안하면 태아의 통상적인 성장 기간(10개월)을 고려했을 때 의학적으로 이 후보 본인의 생일일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12월 22일은 공교롭게도 동명이인인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1887년~1910년)의 의거일과 겹친다. 이 의사는 1909년 12월 22일 서울 종현 천주교회당(오늘날 명동성당)에서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려는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를 칼로 3번 찔렀다.
이 후보는 독립운동가와 동명이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후보는 2022년 대선 때 서울 명동 유세에서 이재명 의사가 1909년 이완용을 피습한 곳이라고 설명하며 "명동은 민주화 운동의 심장부"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부친이 일부러 12월 22일을 생일로 신고했다고 전해진다.
이 후보는 프로필상 생일은 1963년 12월 8일(음력 10월 23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 출생일보다 늦게 출생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정확한 날짜를 잊어서 다시 알려줬다는 것이 알려진 이야기다.
이 후보는 2022년 페이스북으로 연재한 웹 자서전을 통해 "어머니가 고된 노동에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아 일곱이나 키웠기 때문에 내 생일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며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음력 (10월) 22일인가, 23일인가 헷갈리던 어머니는 고민 끝에 점바치(점쟁이)를 찾아 생일을 물어봤다"며 "겉보리 한 되에 우주의 기운을 모은 점쟁이는 내 생일을 23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두 생일의 차이는 당시 높은 영아사망률과 출생신고 시 별도의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았던 시대상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 후보의 다른 동생들 역시 출생신고가 1년씩 늦게 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는 학교를 호적에 기재된 것과는 다르게 1963년생들과 함께 다녔다. 1976년에 안동 삼계국민학교 19회로 졸업했다.
다만 1963년 12월 8일 역시 나중에 새로 듣게 된 날짜로 이마저도 확실한 출생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후보 본인도 해당 출생일을 자신의 진짜 출생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역술인들도 이 후보의 정확한 사주팔자를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태다.
주변 정황과 본인의 기억을 종합해 볼 때 이 후보는 대략 1963년에서 196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63년 11월이나 1964년 1월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 후보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이는 과거 한국 사회의 한 단면과 개인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