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버타운 보증금 충당 가능할까
노후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에 묶인 현실
"주거 연계형 연금 제도, 이제는 설계할 때"

퇴직연금을 주거비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고령층의 실버타운 입주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퇴직연금을 주거비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고령층의 실버타운 입주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퇴직연금으로 실버타운 보증금을 대신 내고 매달 연금 수령액으로 주거비를 충당하는 ‘연금 연동형 실버타운’ 제도가 도입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노후의 가장 큰 변수인 주거비 부담을 연금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금융·복지 통합 모델에 대한 논의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고령층 자산은 부동산에 묶여… “연금으로 집을 빌릴 수 있다면?”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의 자산 중 76.4%는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 자산은 단 20%. 노후의 주거와 돌봄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실버타운은 여전히 수억 원대의 초기 비용이 필요해 퇴직연금만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수령 방식을 실버타운의 장기 임대나 리스 구조와 연동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자산이 적은 고령층에게도 새로운 선택지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훈 고령사회금융연구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퇴직연금을 단순한 생활비가 아닌 주거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금융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연금 수령액에 따라 실버타운에 입주하고 월 비용을 자동 이체하는 방식은 충분히 설계 가능한 모델”이라고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보증금+관리비’를 월 수령 연금액에 맞춰 자동 설계할 수 있다. 고령층은 경제적 불안 없이 안정된 노후 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해외에선 이와 유사한 모델이 이미 운영되고 있다. 일본은 공적연금 수령액을 기준으로 입주 가능한 ‘지급형 실버하우스’ 제도를 운용 중이다. 영국과 호주는 퇴직연금 또는 국민연금을 신탁 형태로 관리해 고령자 전용 주거시설의 월세 납부에 활용할 수 있도록했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공단·퇴직연금사업자들이 연금 수령 구조를 다양화하려는 논의를 시작했지만, 아직 ‘주거 연계형 연금 모델’은 구체적으로 설계된 바 없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실현되려면, 연금의 안정적 운용과 고령자 보호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 민간 연금컨설팅사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연금 수령액은 매월 고정되지 않고 퇴직 시점이나 금융 상품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 주거 계약은 리스크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령층이 본인의 연금 수령 패턴을 이해하고, 주거와 연계해 선택할 수 있도록 ‘금융 복지 상담 서비스’도 제도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퇴직연금 관련 정책은 대부분 연금의 수령 구조나 세제 혜택에 집중돼 있다. ‘주거 연계’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정책 테이블에 올라온 적이 없다.

정부는 지난 4월 ‘고령층 맞춤형 금융서비스 확산 방안’을 발표하며 고령자 금융 상담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주거 문제와의 통합 관점은 빠져 있다.

김성훈 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연금이 단지 현금을 지급하는 데 그치는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연금이 주거와 돌봄 삶의 질까지 설계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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