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1분기 첫 매출 역성장
트렌드 단기화·초저가 경쟁에
편의점 업계 전반 수익성 악화
자영업 침체에 점포 정리 우려

근거리 식료품점으로 불황 속 성장세를 이어오던 편의점 업계가 내수 침체와 고물가, 고금리의 파고에 직격탄을 맞았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소비 트렌드 변화 속에 업계는 첫 매출 역성장을 기록하며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 전망 역시 자영업 시장 침체 영향을 받아 가맹점 사업 위주인 편의점 업계도 불황의 여파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편의점 업계가 올해 1분기 처음으로 매출 역성장을 기록했다. 고정비 부담이 크지 않고 경기 영향을 덜 받아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았던 편의점은 대표적인 ‘불황형 업태’로 손꼽혔지만 장기화되는 소비 침체와 외형 성장 한계에 버티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동안 산업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여겨졌던 ‘점포 수 늘리기’ 전략도 한계에 부딪혔으며, 인건비·임대료 등 고정비 부담과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가 업계 수익성을 빠르게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올해 1분기(1~3월) 편의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해 2013년 통계 집계 이래 첫 분기 역성장을 기록했다. 편의점 분기 성장률은 지난 2022년 10.8%, 2023년 6.1%, 지난해 4.3%를 기록하며 점차 둔화된 데 이어 결국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이다.
올해 1분기 업체별 실적도 하락세다. GS25는 매출이 2조1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172억원으로 34.6% 급감했고,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역시 매출 2조165억원으로 3.2%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226억원으로 30.7% 줄었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비용 부담과 매출 증가세 둔화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국내 편의점 점포 수도 감소세다. 지난해 말 기준 5만4852개로 전년보다 68개 줄었으며, 산업 태동 이래 처음으로 연간 점포 수가 감소했다. 특히 세븐일레븐이 미니스톱과 합병하며 1000개 이상 점포를 줄인 영향이 컸다. 점포 증가율 역시 2018년까지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 2019년부터 5%대, 지난해에는 2∼3%대로 하락했고, 올해 1분기는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3월 월간 증가율은 0.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점포수 감소는 미니스톱 합병 원인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체 산업이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고물가·고금리 기조에 따른 실질 소비 위축이 매출에 영향을 줬다는 게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1분기에는 주요 품목인 식품, 생활용품부터 수년간 판매량 증감 변화가 없던 담배까지 포함해 전 카테고리에서 구매 건수 자체가 감소했다.
무엇보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편의점 업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첫째는 급변하는 트렌드다. 예전처럼 검색어 순위로 전 국민들이 공유하는 트렌드들이 별로 없고, 최근에는 각 개인의 알고리즘에 따라 맞춤 트렌드가 공유된다. 사실상 니즈가 다양해진 환경이 된 셈이다. 또 흑백 요리사 등 공통된 트렌드가 발생하면 폭발적인 니즈로 이어지지만 그 트렌드가 알고리즘에 따라 순식간에 사라진다. 실제로 CU 관계자는 “흑백요리사 유행으로 맛폴리 권성준 셰프가 만든 밤티라미수는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상품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물가 급등에 초저가만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도 편의점 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최근 편의점은 990원 커피 등 ‘가성비’, ‘가심비’를 넘어 용량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싼 가격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트렌드가 빨라지고 가격이 싸져야 하면 사실상 NB(내셔널 브랜드) 상품을 만드는 제조회사들, 즉 대형 식품기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NB 상품은 대량으로 물건을 제조해야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 회사에 공급이 가능한데 트렌드가 짧다 보니 대량으로 생산할 수가 없다. 대량 생산을 못 하니 단가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가격을 올린 상품들은 팔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유통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량으로 상품을 준비해줄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 중소기업들과 트렌드에 맞는 상품들을 소량으로 만들되 가격을 싸게 팔게 되면 유통 회사 입장에서 마진이 박해지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 편의점의 지난해 이익률은 꺾였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체 시장에서 총 매출량이 5% 이상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케일 메리트(규모의 확장으로 얻게 되는 이익)가 증가해야 되는데 오히려 이익률은 전년 대비 떨어진 한 해가 됐다”며 “NB 상품들로는 소비자 대응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편의점 업계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출점 위주의 외형 성장 전략 대신 백화점과 대형마트처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점포 수보다는 점포당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특히 편의점 점포는 99%가 가맹점인 만큼 자영업 시장의 변화가 편의점 산업에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인건비가 아니라 원자재 특히 원물과 관련된 원가 비용의 증가가 발생하고 있다”며 “자영업 시장에서 인건비는 무인화로 흡수했지만 원가는 답이 없다. 자영업 시장의 변화가 결국 편의점에도 영향을 끼치고 수익성을 따져본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사업을 접겠다고 나서면 본사 의지와 관계없이 점포 정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자영업자들이 편의점과 여타의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을 비교하는 해가 될 것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자영업 시장의 흐름이 편의점 업계의 기반이자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자영업 시장의 방향성과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사업 지속 여부를 주요 지표로 주목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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