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지난하고 지리멸렬할지라도
'함께란 사실'이 주는 힘에 관하여

스미다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어느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영화
스미다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어느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영화

한 숏

영화 <어느 가족(Shoplifters, 2018)> 러닝타임 1시간 11분경, 하츠에 집 지붕과 마당 BEV. 가족 구성원이 모두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멀리 스미다강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아름다운 불꽃을 볼 수 없다. 폭죽 터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행복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씬

오사무는 쇼타와 유리에게 가짜 손가락 마술을 보여준다. 쇼타와 유리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워한다. 할머니 하츠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본다.

이 편

도쿄 외곽의 한 허름한 집에 건설현장 일용직 오사무와 세탁업체 직원 노부요, 유흥업소 접대부 아키, 오사무와 함께 도둑질을 하며 자라는 소년 쇼타, 연금과 바람난 남편의 집에서 종종 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주인 할머니 하츠에가 함께 산다. 어느 봄 밤, 이들은 부모에게 학대받던 어린 소녀 유리를 데려와 함께 살게 되고 여섯 명은 점차 진짜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하지만 하츠에가 죽고 쇼타의 도둑질이 적발된 이후 그들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사회 제도의 감시망에 걸려들고 만다.

가족의 다른 말인 '식구(食口)'는 먹는 입을 뜻한다. 서류상으로도 유전적으로도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들이 코타츠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유리는 내 여동생이 아니다"라던 쇼타는 시장에서 유리와 간식을 사서 나눠 먹은 뒤 함께 다니게 되며 하츠에와 아키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각자의 '은밀한' 수입원을 공유한다. 이렇게나 자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이미 서로를 식구라 부를 수 있다.

이들 관계의 존재 방식은 노부요를 통해 설명된다. 노부요는 회사에서 근무시간을 줄일 것을 요구받는다. 근로자 1인당 임금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회사는 이를 '워크셰어' 제도라고 부른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오사무에게 노부요는 답한다. "가난을 조금씩 나눠 갖는 거지."'

"가난을 함께 나눠 갖는 것." '워크셰어'가 무엇이냐고 묻자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는 답한다. 그녀는 자신과 같이 학대 피해를 받는 유리를 친딸처럼 여긴다. /네이버영화
"가난을 함께 나눠 갖는 것." '워크셰어'가 무엇이냐고 묻자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는 답한다. 그녀는 자신과 같이 학대 피해를 입은 유리를 친딸처럼 여긴다. /네이버영화

노부요가 유리에게, 오사무가 쇼타에게 부모로 불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은 이 둘의 부모에게 흘러간다. 이들은 괜찮은 부모를 가졌을까? 작품은 답을 주지 않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이 둘이 하츠에와, 하츠에의 집에서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원하는 모습의 부모를 가지지 못했음에도 이들은 상처받은 두 아이에게 '정상적인' 부모로서 기능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들은 혼자 벌어도 먹고살 만한 능력이 있다. 그렇다는 점에서 이 둘의 동거 목적은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거둬 먹여 길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가진다.

가정의 달을 맞아 소개하는 작품이지만 작품 속 하츠에 일가는 '온정적'이라는 변명 아래 정당화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이들의 이기심과 무책임 또한 냉정하게 포착한다. 쇼타는 도둑질이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무언의 저항을 시도한다. 하츠에는 손녀처럼 키운 아키에게도 아키의 친조부가 자신을 버린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숨긴다. 무엇보다 하츠에 사망 이후 이들이 선택한 시신 암매장 및 연금 불법 수령은 법과 제도의 시선에서는 명백한 범법 행위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단지 '연대'했을 뿐임을 상기시킨다. 쇼타가 마트에서의 도둑질을 의도적으로 적발당한 뒤 제도의 감시망은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이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한다. 결국 노부요와 오사무는 경찰 취조를 받게 된다. 하츠에를 암매장한 것과 관련해 형사는 "시신 유기는 큰 죄다"라며 노부요를 질책하지만 그녀는 시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츠에를) 주운 것"이라 답한다. 노부요의 공허한 표정에는 '실제로 버린 것이 누구인지 알기나 하고 묻는가'라는 의문이 담겨 있다.

제도는 방치가 그 존재 목적인 양 사회의 약자와 부조리를 방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그들의 삶 속으로 손을 깊숙이 넣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헤집어 놓는다. 작품에서도 제도는 학대받던 유리, 버려졌던 쇼타를 거둬 먹였던 오사무와 노부요를 유괴범으로 규정한다. 결국 노부요는 감옥에 갇힌다.

경찰 조사 중, 유리가 친부모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형사의 말에 노부요는 묻는다. "낳기만 하면 다 엄마가 되나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학대를 당한 유리를 친딸처럼 대했던 노부요는 화면 밖의 관객에게도 묻고 있다. 두 아이(쇼타, 유리)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냐는 형사의 질문에 노부요는 답하지 못한다. "뭐라 불렀을까요······. 뭐라 불렀을까······." 노부요는 독백도 답변도 아닌 말을 하고 답답함도 체념도 아닌 얼굴로 눈물을 흘린다.

작품상 소리가 없는, 그래서 상대에게 닿지 못하는 대사는 총 두 번 등장한다. 하츠에는 해변에서 노는 '식구'들을 향해 "다들 고마웠어" 하고 말한다. 작품의 마지막, 쇼타는 오사무와 헤어져 보호시설로 가는 버스에 오른 뒤 뒤쫓아오는 오사무를 끝끝내 외면하지만, 오사무가 더 이상 자신을 볼 수 없을 때 비로소 창문에 대고 오사무가 가장 바랐던 한 마디를 한다. "아버지" 하고 부른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때로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작중 이들은 '가짜 가족'이었지만 이상적인 가족의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어느 가족〉은 혈연 없이도 서로를 책임지는 인간관계가 가능하며 그것이 오히려 제도가 강요하는 관계보다 더 진솔하고 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의 달, 5월인 만큼 가족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 영화는 '함께 있어준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말없이 증명해 보인다. 그러니까 가족이란, 지리멸렬하고 다소 '자본주의적'인 것일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시선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고 가치가 있다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어느 가족'의 등 뒤에는 소리없이 "고마웠다"고 말하는 하츠에가 있다. /네이버영화
'어느 가족'의 등 뒤에는 소리없이 "고마웠다"고 말하는 하츠에가 있다. /네이버영화

작중에서 '인간의 실종'은 두 번 일어난다. 첫 번째는 유리의 본가에서의 실종이고 두 번째는 하츠에의 죽음으로 인한 실종이다. 실종은 사건을 만든다. 그것이 제도가 인정한 '가족'이든, 작품 속의 기묘한 '어느 가족'이든 구성원의 부재는 곧 문제로 연결되고 인식된다.

그런 면에서 '食口'란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존재이자, 채워 넣어야 하는 공(空)이다.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당연히 마주하게 될,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얼굴처럼. 고단한 하루는 그런 '구멍'을 채우는 행위 속에서 위로받고 상쇄된다.

그래서 다시 '한 숏'으로 돌아가면, 관객은 불꽃놀이가 끝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 한 번 더 주목하게 된다. 감독의 의도대로, 가족이란 존재는 눈앞에 없어도 그 존재를 ‘느끼게’ 함으로써 희망을 주고 웃게 만드는 불꽃놀이 같은 것일 테다.

티캐스트 예술 전용 영화관 씨네큐브는 개관 25주년을 맞아 고레에다 감독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행사 기간은 오는 13일까지다. (이미 매진되었으니 양도표를 구해보라.)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외
보는 곳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 감독의 '절제된 연출' 속 또 다른 가족이 보고 싶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 잔잔하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일본 영화를 찾는다면, <퍼펙트 데이즈(2023)>

※ [편한숏]은 기자 개인의 감상과 해석을 담은 장면 비평 코너입니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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