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보다 중요한 건 품질
FDA, CMC로 신뢰 본다
신약 허가, 공정이 승부처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 있는 FDA 본부 모습. /연합뉴스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 있는 FDA 본부 모습. /연합뉴스

박테리아 오염으로 인한 사망, 곰팡이 감염으로 인한 집단 뇌수막염. 모두 멸균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조공정 그중에서도 멸균에 집착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생명을 다루는 신약이라면 약효만큼이나 중요한 게 품질관리(CMC)라는 것이 FDA의 철학이다.

최근 HLB와 중국 항서제약이 미국에서 간암 신약 허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FDA는 두 차례에 걸쳐 보완요구서한(CRL)을 발송했고 그 핵심엔 멸균 공정이 자리했다.

HLB와 항서제약이 개발한 간암 치료제는 신생혈관 억제제 리보세라닙과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의 병용요법이다. 임상 3상 결과 기존 치료제 대비 생존기간이 더 길다는 긍정적인 데이터를 확보했다. 하지만 FDA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효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CRL에 이어 최근 발송된 두 번째 CRL 역시 내용은 유사했다. 항서제약이 캄렐리주맙을 생산하는 제조 시설의 멸균 프로그램, 시각 검사 절차, 전자장비 성능 점검 등의 미흡함이 지적됐다. HLB 측은 "두 번째 CRL의 내용은 경미하다"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복된 CRL 자체가 FDA의 불신을 방증한다고 본다.

FDA는 경미한 보완사항(Class 1)에 대해선 약 2개월 내 재검토하지만 중대한 사안(Class 2)으로 분류될 경우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 여기에 동일 이슈로 CRL이 반복될 경우 신규 허가 신청에 준하는 심사로 넘어갈 수 있다. 사실상 허가 일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2023년 인도 글로벌 파마 헬스케어가 제조한 인공눈물 제품에서 녹농균이 검출돼 미국 16개 주에서 감염자가 발생했고 최소 3명이 사망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에는 미국 뉴잉글랜드컴파운딩센터가 조제한 스테로이드 주사제에서 곰팡이가 검출돼 76명이 사망한 참사가 벌어졌다. 공통점은 CMC 실패였다.

미국 의료계는 효능보다 안전을 더 중시한다. 간암 환자 단체와 의료진들 역시 "새로운 치료 옵션은 환영하지만 멸균이 확보되지 않은 약물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FDA는 공식적으로 "임상 결과가 뛰어나더라도 제조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허가할 수 없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신약의 실사용 여부는 이 기준을 충족했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에서 CMC 개발 및 준비 파일럿(CDR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직 FDA 출신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전통적인 약물 개발 절차는 승인까지 평균 10~15년이 걸린다. 특히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서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일수록 한시라도 빨리 환자에게 도달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며 "그런데 많은 경우 효과적인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CMC 개발이 따라오지 못해 승인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가 반복됐다"고 했다.

이어 "첫째 제조 프로토콜과 공정 제어는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공정 변경 사항은 반드시 설명되고 문서화되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셋째 효능 분석은 신뢰성 있게 검증되어야 하고 약물의 임상적 효능 및 작용기전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 원칙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규제 기관은 ‘이 회사가 자사 제품과 제조 공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모든 업데이트가 철저히 문서화되고 품질 관리 시스템 내에서 검증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임상 3상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해당 단계에 맞는 제조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HLB는 항서제약과 함께 보완사항을 정리해 올해 7월 FDA 허가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 애브비도 CMC 관련 지적을 두 차례 받은 후 최종적으로 신약 승인을 받은 전례가 있다.

하지만 반복된 CRL은 ‘허가 가능성’보다 ‘신뢰 회복’의 문제로 귀결된다. FDA는 단지 문서를 보완하라는 게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신뢰성을 입증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진양곤 HLB 회장은 최근 정기주총에서 “미국 FDA와 포스트 액션 레터(PAL)를 통해 구체적인 보완사항을 확인하고 있다”며 “조속히 허가를 재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HLB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FDA로부터 아직 구체적인 보완 지침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멸균 공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며 "우리가 받은 지적은 멸균 과정에서 일부 검증 절차가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심각한 결함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FDA 출신 CMC 전문가와 외부 컨설턴트 모두 해당 사항이 허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보완이 완료되면 허가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향후 일정과 관련해 그는 "이번 주 안에 FDA로부터 포스트 액션 레터(Post Action Letter)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완이 필요한 구체적 사항을 확인한 뒤 재심사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이미 두 차례 실사를 받은 만큼 추가 실사가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