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의 건축마실]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중랑천과
함께 살아온 55년의 세월

중랑천 하류에 있는 살곶이 다리 /그림=손웅익
중랑천 하류에 있는 살곶이 다리 /그림=손웅익

내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올라갈 때 중랑천이 흐르고 있는 면목동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은 용마산 아래 있었지만, 중랑천 변 판잣집에 사는 친구들이 있어서 자주 놀러 갔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돌아 들어간 기억도 난다. 벽은 블록으로 쌓고 그 위에 지붕 서까래를 얹고 나서 루핑이라는 검은 기름종이를 깔면 집이 완성되었다.

그 루핑이라는 기름종이는 방수가 되었던 모양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과연 루핑이라는 재료가 있다. 종이에 아스팔트를 침투시키고 그 위에 피복용 아스팔트를 부착하고 마감으로는 운모 분말을 뿌린 방수시트라고 되어있다. 한때 유행하던 지붕재인 아스팔트슁글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뚝방 위 평지에 있는 집은 블록으로 지은 집이라 그나마 봐줄 만했다. 그러나 뚝 비탈에 지은 집들은 나무판으로 벽과 지붕을 만든 그야말로 판잣집이었다. 매년 장마가 지면 비탈에 붙어있는 집은 다 떠내려갔고, 중랑천 상류 상계동, 의정부에서 떠내려오던 판잣집의 잔해와 가재도구가 중랑천을 가득 채웠다. 돼지나 닭도 떠내려오던 처참한 광경이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중랑교와 군자교 사이에 장안교와 장평교가 생겼지만 그 시절 면목동에서 장안동으로 넘어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배를 타고 둑 양쪽에 매여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겨울에는 굵은 철사를 바닥에 붙여 만든 썰매를 가지고 중랑천으로 몰려갔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대문 운동장 상가에서 스케이트를 하나 장만해 주셨다. 집으로 가던 길에 중랑교 아래에서 처음 스케이트를 신어보았다. 얼음이 다 얼지 않아 여기저기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위험한 얼음판이었다.

중랑천 인근에 사는 동안 대학생이 되었는데, 어쩌다가 중랑천 하류에 있는 한양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게다가 건축과 강의실은 중랑천과 접하고 있는 후문 근처에 있었다. 그 후문 쪽에 고등학교 동기가 살고 있었는데 중랑천 변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판잣집이었다. 그 친구 집에서 내다보면 살곶이 다리가 보였다.

결혼하고 처음 전세로 들어간 아파트는 중랑천 인근 하계동에 있었다. 그곳에서 1년 살고 이사한 곳은 상계동이었는데 그 아파트도 중랑천 가까이 있었다. 상계동에 사는 동안 강남으로 출퇴근하려면 동일로를 이용해야 했다. 출근길은 면목동과 화양리 사거리를 지나고 영동대교를 건너야 했다. 상계동부터 차곡차곡 늘어난 출근 차량은 화양리와 영동대교에 이르러 그야말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곤 했다.

그 지옥의 출퇴근으로 고생하던 중 1992년 1월 29일 군자교에서 상계동까지 중랑천변으로 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동안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나는 개통 전날 자정에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동부간선도로 진입로가 있는 군자교로 갔다. 그리고 차단시설을 치우고 동부간선도로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개통 전날이라 도로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나는 창문은 내리고 “야호~”를 외치며 군자교에서 상계동까지 초고속으로 질주했다. 평소 한 시간도 넘게 걸리던 길을 단 몇 분 만에 주파하면서 그동안 동일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중랑천 지류인 방학천에서 바라본 도봉산 /그림=손웅익
중랑천 지류인 방학천에서 바라본 도봉산 /그림=손웅익

상계동에서 몇 년 살다가 창동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했는데 그 집도 중랑천 바로 옆이었고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중랑천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55년이 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중랑천은 천지개벽을 했다.

오염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물은 맑아져서 이제 생태하천이 되었다. 물이 깨끗해지니 각종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새가 날아들고 있다. 둔치에는 보행로와 자전거 통행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운동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구간마다 특색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코스모스 정원도 있고 튤립정원도 있다. 벚꽃 축제도 하고 장미꽃 축제를 하는 구간도 있다.

청계천을 잘 정비했던 시장이 대통령이 된 데 영감을 얻은 것일까. 오늘도 중랑천을 접하고 있는 지자체장들은 중랑천 환경 개선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나저나 삼십 년 전에 졸속으로 개통된 동부간선도로는 지금도 공사 중이다. 확장한다고 십 년, 지하화한다고 십 년, 상부 공원화한다고 몇 년···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공사로 시도 때도 없이 도로가 꽉 막혀있으니 참 답답하다. 어느새 나는 동부간선도로로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세월의 빠름을 아쉬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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