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 빌미
핵 포기 주체를 북한으로 명확히 설정 의도
야당은 반미 정서 편승 핵무장 음모론 제기

2021년경 위성이 촬영한 북한 영변 핵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 /AP=연합뉴스
2021년경 위성이 촬영한 북한 영변 핵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 /AP=연합뉴스

"한미 양국은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조현동 주미대사의 발언은 단순한 용어 정리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양측이 서로 다른 사전을 들고 회담장에 들어가 벌였던 '동상이몽'의 종지부를 찍는 선언이었다. 북한이 핵무장을 헌법에까지 명시하고 선제공격 의지를 천명한 상황에서 핵을 포기할 주체를 분명히 하자는 뜻이다.

28일 정치권 일각에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의 공식화를 두고 정부 대응에 대한 불만이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G7 외무장관 성명, 유엔 군축회의 공동발언 그리고 국회의 결의문까지 '북한 비핵화’로 정리됐지만 공식 외교 용어를 부정하며 낡은 표현에 집착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는 남한이 핵을 보유하고 북한만 포기하라는 뜻처럼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회의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도 "한국의 비핵화 의지와 국제사회의 반확산 흐름을 고려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오히려 국제사회에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며 "북한 비핵화로 표현을 정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용어 하나가 전체 외교 전략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반미 감정을 자극하며 안보 체제를 흔드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조갑제 등 일부 논객은 "주한미군 주둔은 사대주의의 잔재"라며 "국방에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 바이든 정부 산하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주국방론과 결합한 핵무장론은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요소다.

또 이런 가운데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준비 중이라는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이 나왔다. 핵 보유 기정사실화를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뒤따르지만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핵보유국 인정을 바란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석이 외교 원칙을 왜곡하고 있다고 일축한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 어느 나라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대북 정책 한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거부하는 이들이 대화의 문이 닫힐까 우려하는 척 하지만 정작 그들이 고수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틀이야말로 북한이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나 핵우산 폐기를 요구할 여지를 남겨 오히려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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