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상식선 상에서 어긋나
친인척 채용 비위 가관
2030 세대 시각 부정적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요사이만큼 헌법재판소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운명과 조기 대선 실시 여부를 결정한 곳이 바로 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원의 권한을 두고 내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주목받고 있다.

2023년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 인사들의 자녀가 경력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감사원은 이에 대한 특별 감사를 계획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자신들에 대한 감사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었다. 해당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8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감사원 직무 감찰은 위헌이라고 결정 내렸다. 헌법상 감사원은 국가 회계 검사와 행정기관 직무 감찰권을 갖지만,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헌법기관이므로 감찰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논리였다. 

헌재는 "대통령 소속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를 직무 감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도 있다"는 점도 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헌법재판소의 해당 결정에 대해 부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선관위야 당연히 반기겠지만 감사원도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헌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헌재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헌재의 결정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다른 영역의 별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단 해당 사건의 발단은 선관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선관위의 직원 채용 ‘관행’은 정말 가관이다. 감사원이 지난 10년간 선거관리위원회 채용 비위를 감사한 결과 위반 사항이 900건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선관위는 가족 회사다” “과거 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라는 말이 선관위 측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선관위의 공무원 채용 실태가 어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관위 고위직의 친인척들이 끼리끼리 채용될 때 이를 모르고 선관위 공무원이 되는 것을 꿈꾸었을 젊은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의 꿈을 접거나 인생의 진로를 바꿔야 했다. 공정이라는 문제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 것이 국가 기관의 마땅한 책무이건만 이들은 젊은이들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것이다. 

선관위의 이런 행위는 당연히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판 음서제도를 서슴지 않고 ‘시행’했던 국가 기관을 신뢰할 국민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재는 선관위 감사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며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도 있다”라고 언급했으니 이런 헌재의 언급은 우리를 당혹게 한다. 현재 선관위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 훼손될 신뢰가 남아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헌재가 헌법을 나름 해석한 결과겠지만 이런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국가 기관에 대한 회의감만을 줄 뿐이다. 

여기서 잠깐 여론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27일 발표된 전국 지표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025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2030 세대의 응답률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음서제도가 판치는 선관위에 대한 감사가 위헌이라고 결정했으니 젊은이들이 헌재를 바라보는 눈은 더욱 부정적으로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헌재는 이번 결정이 선관위의 부패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는 했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이런 헌재의 결정을 상식선 상에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헌재의 이번 결정이 잘못됐다는 의견도 헌법학계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헌재를 향한 시선은 더욱 안 좋아질 수 있다. 권위를 가지고 사회적 신뢰를 높여야 할 헌법재판소가 상당수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비치는 상황이 심히 걱정스럽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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