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시니어 입장가] (3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의 감동 실화

영화 <크레센도>는 2021년 개봉된 독일 영화로 드로자하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1999년 이념과 종교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며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공동 창립한다. 실화다.

젊은 이스라엘 연주자와 역시 젊은 팔레스타인 연주자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해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이다. 바렌보임이 1942년 생이므로 그의 나이 57세였다. 젊은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성공한 음악가였고 57세라면 한창 유명세를 누릴 거장이었다.

그런 그가 골치 아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젊은 연주자들을 반반씩 모집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운영한 것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페테르 시모니슈에크라는 배우가 바렌보임의 본명이 아닌 ‘에두아르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영화 '크레센도' 포스터 
영화 '크레센도' 포스터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앙숙이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부유한 가정에서 음악적 수준이 높은 편이다. 팔레스타인은 매일 험악한 분위기의 국경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 길부터 나라 사정도 열악한 음악 환경이었으므로 기량 차이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를 증오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상대의 음악을 듣고 하모니를 이뤄 연주해야 하는데 연주 소리만으로도 두 집단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었기에 화합이 어려웠다. 그래서는 오케스트라를 이뤄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렌보임은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가며 두 집단의 융화와 화합을 시도한다. 오케스트라 단원 대표를 홈그라운드인 이스라엘계가 아닌 팔레스타인 소녀를 추천하지 않나, 가운뎃줄 사이로 양측을 세워 놓고 서로를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한다.

“테러리스트”, “킬러” 등 서로를 증오하는 말로 그야말로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서로를 향해 욕설을 퍼부은 후,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이쪽으로 서라고 하자 대부분 그쪽으로 섰다. 그런 다음에는 서로 호의적으로 바뀌며 팔레스타인 단원에게는 유대교 모자를 씌워주고 이스라엘 단원에게는 팔레스타인 스카프를 씌워주게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마음이 있지만 정치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바렌보임은 주 집단을 하나로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고 음악을 같이 한다는 목표를 향해 융화해 나간다. 영화에서는 유대인 소녀와 팔레스타인 소년이 서로 사랑하다가 팔레스타인 소년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유대인 소녀는 집에서 부모가 강제로 데리러 오자 연주회는 취소된다.

영화 '크레센도' 스틸 컷
영화 '크레센도' 스틸 컷

이들 오케스트라 단원은 연주회가 취소되어 한적한 공항 대기실에서 귀국행 항공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스라엘 단원 하나가 유리 벽에 바이올린 활을 두드리며 연주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자기 악기를 꺼내 볼레로를 연주하는 장면이 감동적인 엔딩이다. 이미 단원들은 하나가 된 것이다. 원제인 '크레센도'는 ‘점점 세게’를 의미하는 음악 용어다. 음악을 통해 점차 커가는 화합과 이해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바렌보임은 한창 정상의 위치에서 화려한 지휘 활동만으로도 바쁜 사람이다. 이런 힘들고 빛도 나지 않는 두 민족을 하나로 하여 오케스트라를 하게 한 것은 고도의 철학을 실천한 재능 기부다. 예술을 통한 재능 기부였기에 돋보인다. 이런 것에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세계 평화는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망상일까?

은퇴자들은 은퇴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본인이 사회를 위하여 재능 기부할 것이 없는지 돌아보고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은퇴 전까지 받은 수혜를 사회에 갚아야 하는 것이다.

한편, 2023년 개봉된 미국 영화 <크레센도>는 제목만 같을 뿐 다른 영화다.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진행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로서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음악 애호가라면 두 작품을 같이 챙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