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시니어 입장가] (31)
연애 시절 끌렸던 서로의 다름이
살아 보니 헤어짐의 원인이 됐다
미모보다 편안함이 좋다는 남편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은 영국 로맨스 멜로영화다. 윌리엄 니콜슨 감독 작품이며 아네트 베닝, 빌 나이, 조쉬 오코너, 아이샤 하트 등이 출연했다. 노년의 부부 관계 그리고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다. 부부가 각자 하던 일이 있을 때와 하던 일에서 은퇴한 후 늘 같이 있다 보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잘 그린 영화다.
그레이스는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유쾌하고 솔직한 성격의 아내다. 에드워드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의 남편이다. 그리고 제이미는 아빠를 닮아 감정 표현이 서툰 하나뿐인 아들이다.
성격은 다 다르지만 평범하게 29년을 함께한 가족이다. 어느 날, 아내가 에드워드를 몰아세운다. 왜 말이 없느냐부터 시시콜콜 시비를 건다. 견디다 못해 아는 상식대로 말하면 그건 백과사전에 있는 얘기라며 핀잔을 준다. 감정을 드러내라는 얘기다. 에드워드가 원래 할 말이 없는 남자이니 제발 그냥 놔두라고 하자 느닷없이 뺨을 때린다. 이쯤 되면 아내가 무서워진다.
나이 들면서 호르몬 작용의 변화로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된다. 에드워드는 점점 소침해지고 그레이스는 성격이 남성스러워진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남편을 닦달하면 겁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성들은 쉼 없이 말이 튀어나오는 재주를 가졌지만, 남성들은 원래 말재주가 없고 말수도 적다. 그런데 여자가 마구 말한 것에 대해 같은 양의 대꾸 또는 말을 하라고 한다면 그건 고문이다.
이 일로 '에드워드'가 아내를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진 '그레이스'는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사랑은 식은 지 오래다.
에드워드는 학부모 중 한 명인 여자와 1년 전부터 사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있는 그대로 봐주는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에드워드는 짐을 싸서 집을 나서자 곧바로 그 여자네 집으로 간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그레이스가 거부하고 돌아선다. 그러나 한번 돌아선 에드워드는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연애 시절엔 서로의 다름이 매력이었으나 살아 보니 맞지 않는 부부라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이혼하게 되면 집도 미련 없이 아내에게 넘긴다고 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변호사에게 묻는다. 에드워드가 죽을 경우 유산 상속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면 집은 물론 에드워드의 저축, 연금 일부까지 그레이스의 소유가 된다고 설명해 준다. 이 대목에서 머릿속 계산을 하며 묘한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가 동거하는 집까지 방문한다. 어떤 여자인가 봤는데 평범한 여자였다. 아주 미인이었다면 인정이라도 할 텐데 너무나 평범한 여자였기에 오히려 전의가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에드워드가 돌아선 데는 자신처럼 몰아세우는 여자보다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멀어져가는 부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제이미는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해 가기 시작한다. 아마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 편이었을 것이다. 새로 사귀는 여자와 어떤 궁합이어야 할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그레이스는 애견을 구해서 에드워드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정을 붙인다. 자살하려는 사람들 상담사로 일한다. 각자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원래부터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춰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변화로 남녀가 감정도 변하고 입장이 바뀔 수 있다. 이 갭을 서로 이해해 주지 못하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 든 남자는 예쁜 여자보다 편안한 여자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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