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의료 공백 장기화, 진료에만 매진한 1년
정부, 전공의 요구 반영해 사태 해결해야

짐을 챙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몸만 택시에 올랐다. 수술을 가까스로 끝내고 시계를 보니 바늘은 새벽 세 시를 가리켰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이런 생활이 익숙하다고 한다. "일상이에요.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중환자실 연락을 처리하며 병원에서 살고 있죠."
의사들에게 저녁 있는 삶이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의정 갈등은 1년이 넘도록 줄다리기 중이다. 긴 시간 동안 의료 공백은 우려를 넘어 현실이 됐고 그 무게는 의료진의 삶을 고스란히 짓누르고 있다. 연구와 교육으로 채웠던 교수들의 시간표는 진료와 당직으로 대체됐다. 업무는 과중하다 못해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임시방편 수준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 수만 늘려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사고 법적 리스크와 기피 과 수가 문제 등 구조적 난제를 외면한 채 의료 시스템을 온전히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전공의의 부재는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한국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성경제신문이 21일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를 만나 의료 공백 사태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ㅡ 전공의 부재로 인해 병원 내 전문의와 교수들이 감당해야 하는 추가 업무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특히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통증 치료 위주의 진료를 해왔다면 지금은 마취와 통증 모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 3~4일 근무하고 하루 반 정도 연구할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주 5일 내내 환자 진료와 마취에 매진하고 있죠. 연구는 아예 할 수 없고요. 야간 당직까지 포함하면 업무량이 최소 1.5배 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괴로워요. 한두 달이면 끝날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견디겠지만 기약 없는 고통이 버겁습니다."
ㅡ 환자 진료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일상생활이 안 되는 점이죠. 24시간 언제든 전화가 오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환자 증상이 간단하다면 다음날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바로 가야 해요.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뛰어가죠.
이러한 문제는 곧 소극적 진료로 이어집니다. 환자를 밀어내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상처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있을 때 예전이라면 아침, 저녁으로 드레싱 하면서 입원해서 관리했지만 지금은 외래 진료로 봅니다. 상처가 더 안 좋아지면 그건 환자 책임이 되는 거죠.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진료하기 어렵게 돼버렸어요.
환자 입장에선 화가 나는 일이죠. 하지만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하니까 차마 화는 못 내고 속으로 끙끙 앓는 분들이 많아요. 가끔 화내고 욕을 퍼붓는 분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다시 병원을 찾지 않을 환자들이죠. 의사와 환자 모두 힘든 현실입니다."
ㅡ 병원 내부적으로 전문의 간 협력이나 업무 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병원 차원에서 마련된 지원책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과거에는 어려운 환자가 있거나 특수한 경우에 타 과 협진을 요청하면 바로 대응이 됐어요. 후배 의료진들이 도와주곤 했죠. 그런데 지금은 각 과가 모두 바빠서 부탁할 여유가 없습니다. 다들 자기 환자 치료하기에도 벅차죠.
병원에선 진료 지원(PA) 간호사들을 통해 일부 업무를 지원받고 있지만 PA가 전공의를 대체할 수는 없어요.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더 많은 책임을 맡으려 해도 병원에서 이를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죠."

ㅡ 현재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공백이 의료 시스템에 미치는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국 의료가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죠. 아이가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집에서 상태가 악화해 생명을 잃는 일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어요.
현재 의대생들은 졸업하겠지만, 전공의가 다 나가버린 상황에서 앞으로 전문의를 선택하지 않고 일반의로만 남는 사례가 늘어날 겁니다. 전문의가 되려면 최소 6년(의대)과 5년(전공의 과정), 총 11년이 걸립니다. 즉 지금 발생한 의료 공백은 최소 11년 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긴 시간 동안 국민들은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거죠. 설령 전문의가 배출되더라도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은 외면한 채 단기적 대책만 고집하는 것이 가장 큰 우려입니다.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의료 서비스 비용이 적어지거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증원은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의대생들의 실습이나 교육 체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졸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에요. 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한 의대생들이 이후에 제대로 된 의사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ㅡ 필수의료 분야에서 전공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의료진에 대한 형사 처벌 문제를 해결하고 필수과 의사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합니다. 형사 처벌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흉부외과 등 힘든 과에도 의사 지원율이 꽤 됐어요. 특히 환자를 살리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은 의사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보람이고, 그로 인해 사명감이 있는 의료진이 있었죠. 하지만 그런 의사들조차도 지금의 구조에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의료분쟁이 형사 사건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민사로 해결될 문제도 형사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필수의료를 선택하려고 하겠냐는 것입니다. 정부가 법적 리스크를 줄이고 의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난은 해결되기 어려울 겁니다."

ㅡ 최근 상황과 맞물려 교수로서 의사라는 직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교수로서의 의사란, 예전에는 월급이 적어도 교육자와 연구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육도, 연구도 못 하는 상황에서 환자 진료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회의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죠.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교수나 전문의들은 로컬 병원에서 의사 혼자 환자를 진료·수술하는 것처럼 똑같이 일하고 있어요. 차이가 있다면 로컬 의사들의 월급이 교수들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점이에요. 마취과의 경우 수술실 운영이 축소되면서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촉탁의를 고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촉탁의는 당직도 없고 교수보다 높은 월급을 받아요. 이처럼 더 낮은 월급으로 똑같이 일하거나, 오히려 업무 강도는 높은 현실이 됐습니다.
저는 여전히 교육자로서 이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료 교수들이 떠나겠다고 해도 전혀 비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ㅡ 끝으로 의료 공백과 의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해결하고, 현실적인 정책으로 전공의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조건 개선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를 보장할 실질적인 대책입니다. 또 기피 과의 수가를 현실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필수의료는 지속적으로 붕괴할 겁니다.
의료계는 정부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전달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결국 정부가 이를 무시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단순한 소통 부족을 넘어 현장에서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부재한 결과죠. 정부의 정책적 무신경과 잘못된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