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부결에도 승인 강행 이례적
승인 공문 공개 요청에 "비밀" 고수
기존 동네병원 "환자 뺏겨 문 닫을 판"

보건복지부가 안양시 달빛어린이병원 설립안에 대해 시의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심의 부결에도 불구하고 설립을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기관은 시·도의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의료기관개설위원회를 둔 것은 의료기관 과잉 공급으로 의료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 수급을 고려해 신규 의료기관 설립을 조절하자는 취지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월 28일 안양시 의료기관개설위원회는 의료법 제33조에 따라 보건복지부(복지부) 지정 '달빛어린이병원'의 안양 시내 설립안을 부결 7표, 가결 2표, 기권 1표로 최종 부결했다.
구본상 안양시 의료기관개설위원회(위원회) 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안양시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체 병실의 절반도 차지 않는 상황"이라며 "추가로 60병상을 달빛어린이병원을 통해 늘리는 건 병실 낭비로 판단해 부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달빛어린이병원 측에 미리 60병상은 허가가 어려우니 개설위원회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30병상 미만 의원급으로 줄이면 설립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건소를 통해 알렸으나 달빛어린이병원 측이 이를 묵살했다"고 말했다.
구 위원장은 "보건소도 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된 달빛어린이병원의 설립을 직권으로 허가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며 "보건소는 복지부에 문의한 결과 아동 병원이나 산부인과는 예외 조항이 있어서 허가를 해줄 수 있다고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 측에서 복지부 공문을 공개해 달라고 했는데 보건소 측에서는 공개를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위원회 측은 심의를 부결시켰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고 보건복지부와 안양시 동안구 보건소가 달빛어린이병원 설립을 강행했다는 입장이다.
의료법 제33조 4항을 보면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 또는 정신병원을 개설하려면 시도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시 보건소와 복지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원회 측은 복지부에 병원 설립 허가 내용이 담긴 공문 공개를 요구했지만 이 또한 복지부는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위원장은 "공문에 대한 공개 거부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다. 비밀 사항이라고만 했다. 현재는 정보공개 청구를 한 상태"라고 전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야간과 휴일에 소아·청소년 환자 진료를 위해 복지부가 지정해 운영한다. 연간 최소 3000만원에서 최대 4억3200만원가량의 운영비가 지급된다.
달빛어린이병원에는 해당 병의원의 야간 휴일 운영 시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상대가치점수를 배정해 '야간진료관리료' 명목으로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의원급은 1만3390~2만2600원, 달빛어린이병원 협력 약국에는 야간조제 관리료로 3980원을 가산하고 있다.
안양시에서 소아과 병원을 개원하고 있는 A 원장은 "현재 안양시 종합병원인 한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병상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60병상 달빛어린이병원이 들어서면 동네병원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달빛어린이병원은 60병상을 못 채우면 교통사고 환자를 받아도 되고 빈 병상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특혜를 줘가면서까지 위원회가 부결에도 설립을 허가해 준 까닭이 뭔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안양시 달빛어린이병원의 경우 위원회의 심의 사항을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복지부가 경기도지사(의료자원과장) 수신으로 보낸 공문을 보면 복지부는 "시·도지사가 의료법에 따른 병상 수급 및 관리계획을 확정해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 위원회는 계획에 적합한지 여부는 사실상 심의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청은 지난 7월 8일 복지부 병상관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안양권에 '권역별 병상 증설 계획'을 수립했다. 보건소 관계자도 여성경제신문에 "또한 병상 수급 관리 계획은 의료법 제60조에 의해 시·도지사가 의료기관 병상 수급 및 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어 경기도에서 11월 중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개설위원회에 참석한 B 위원도 "달빛어린이병원이 개설위원회 심의 대상이 아니라면 애초에 위원회를 열 필요도 없었는데 보건소가 위원회를 개최해 놓고 부결되니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위원회 심의 결과를 반영하지 않을 거면 세금 들여가며 위원회는 왜 운영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한방병원 여러 곳의 신규 개설 요청도 위원회에서 부결해 허가해 주지 않았는데 달빛어린이병원이 예외를 만든 만큼 앞으로는 교통사고 환자를 겨냥한 한방병원 개설을 막을 명분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안양시 보건소는 달빛어린이병원 설립과 관련, 복지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건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의료기관 개설 허가는 법령이 정한 요건에 합치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시·도지사는 이를 허가해야 하는 기속재량행위라는 부산지방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라며 "안양시에는 아동병원 및 달빛어린이병원이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구본상 위원장은 "의료기관 개설 허가는 시·도지사의 기속재량행위라는 판결은 2009년 판결"이라며 "의료법 60조에 따라 올해 9월 5일부터 시행된 의료기관개설심의위원회는 복지부의 병상 관리 정책에 따른 수급 관리 계획의 적합 여부를 심의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심의위원회 관련 법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달빛어린이병원 측은 여성경제신문의 취재에 "현재 병원 설립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진료에만 집중할 것"이라며 "허가와 관련한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