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동안구 보건소 위원회 부결에도 허가
위원회 심의는 '참고용'이라는 복지부 해석
병상 과잉 방지 장치 붕괴 수도권 쏠림 우려
전문가 "위원회 심의 의무화 법 정비해야"

소아청소년과 /연합뉴스
소아청소년과 /연합뉴스

정부가 의료기관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2020년 3월 도입한 의료기관개설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보건소가 위원회의 부결 결정을 묵살하고 60병상의 소아청소년과 병원 설립 허가를 강행하면서 제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안양시 동안구보건소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안양시에 소아청소년과 병원 개설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안양시는 지난 10월 관내에 60병상 소아청소년과 병원 개설 허가 신청이 접수돼 서류 검토 및 현장 실사 후 의료법 제33조 제4항에 따라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심의를 개최했으나 위원회는 병상 과잉 공급을 이유로 신청 허가를 부결시켰다.

구본상 안양시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안양시는 이미 소아청소년과 병상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이고 저출산으로 병상 이용률도 낮은 상황이라 추가 설립은 과잉으로 판단해 부결했다"며 "안양시에는 이미 종합병원들도 앞다퉈 병상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 수도권 병상 쏠림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안양시 동안구보건소는 위원회 부결 결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아청소년과 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이 병원은 야간 및 휴일에도 진료가 가능한 달빛어린이병원 지정도 신청한 상태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되면 1억~4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동안구보건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복지부 병상관리위원회 심사 결과 안양 지역이 병상 공급 가능 지역으로 분류됐고, 소아청소년과는 필수 의료에 해당해 당초 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위원회가 과잉 공급 등을 이유로 부결한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위원회의 심의 사항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더욱이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심의는 안양시의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이 수립된 후 시행되고 나서 이뤄져야 하는데 당시는 계획이 수립만 됐을 뿐 시행 전이었기 때문에 위원회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 위원장은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심의를 진행했다면서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이 시행되지 않았을뿐더러 소아청소년과가 필수 의료에 해당해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위원회 심의를 왜 열었느냐"고 반문했다. 

안양시의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이 이미 수립됐음에도 보건소가 이를 '시행 중이 아니다'라는 전제로 복지부에 유도성 질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운영과 관련 경기도지사 수신으로 복지부에 '병상 수급 및 관리계획을 시행하기 전'을 전제로 위원회의 부결 결정이 타당한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복지부는 안양시 달빛어린이병원의 경우 위원회의 심의 사항을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복지부가 경기도지사(의료자원과장) 수신으로 보낸 공문을 보면 복지부는 "시·도지사가 의료법에 따른 병상 수급 및 관리계획을 확정해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 위원회는 계획에 적합한지 여부는 사실상 심의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복지부는 안양시 달빛어린이병원의 경우 위원회의 심의 사항을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복지부가 경기도지사(의료자원과장) 수신으로 보낸 공문을 보면 복지부는 "시·도지사가 의료법에 따른 병상 수급 및 관리계획을 확정해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 위원회는 계획에 적합한지 여부는 사실상 심의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이에 복지부는 "시도지사가 의료법에 따른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을 확정해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 위원회는 계획에 적합한지 여부는 사실상 심의할 수 없다"고 했다.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이 수립만 됐을 뿐 시행이 되지 않아 사실상 위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의료법상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이 시행되어야만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위원회 측은 "유도성 질문"이라며 "안양시는 병상 수급 및 관리 계획을 이미 수립했고 위원회는 병상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이 계획을 근거로 심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병상 공급 과잉 현상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동안구보건소는 병원 허가권을 가진 시도지사가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복지부에 별도의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법상 반드시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일 뿐 심의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최종 결정권자인 시도지사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고 회신했다.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심의는 참고 사항일 뿐 시도지사가 이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이 같은 해석은 수도권 병상 쏠림을 막기 위해 지난 2020년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기관개설위원회를 설치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구본상 위원장은 "위원회는 수도권에 쏠린 병상 과잉을 막기 위해 해당 지역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했는데 보건소와 복지부는 사실상 위원회 설립 의의를 부정하고 위원회 존재 자체를 묵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양시 소아청소년과 병원 설립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자칫 수도권 병상 쏠림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익명의 의료정책 전문가는 "시도지사가 위원회의 결정을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면 수도권 병상 과잉은 물론, 사무장병원, 교통사고 환자를 겨냥한 한방병원 난립 등을 막을 견제 장치가 사라지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2023~2027)에 따르면 현재의 병상 공급 추세가 지속되면 2027년에는 약 10만5000병상이 과잉 공급되고, 국내 전체 병상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일반 병상이 2.1배, 요양 병상이 8.8배 많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강력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가 없다면 수도권 쏠림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구본상 위원장은 "위원회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 무분별한 병상 증설을 막아야 한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전문가 집단의 판단을 무시한 설립 강행이 반복될 경우 정부의 병상 관리 정책마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심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은 지난 8월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새로 열기 위해선 시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사전심의와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해 수도권 병상 과잉을 막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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