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MBC라디오 ‘청춘의 노래들’을 들으며
노래가 전하는 힘을 다시 느끼다

퇴근하면서 듣게 된 라디오에서 캐롤 킹(Carole King)의 ‘You’ve got a friend’가 흘러나왔다. 음악을 신청할 수 있는 곳에 가면 늘 적어낼 정도로 좋아하는 곡인데, 이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 나오다니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게다가 노래가 끝난 후 예상치 않던 손석희 앵커의 목소리가 등장해 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라며 소개하는 게 아닌가(평소라면 배철수 DJ가 나와야 할 시간이다).
MBC라디오가 마련한 한 주간의 특집 방송 ‘청춘의 노래들‘ 중 마지막 날 초대 DJ가 손석희 앵커이며, 자신이 좋아하고(했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곡들을 소개하며 청취자들에게 그 음악과 함께 지나온 시간과 경험을 전하는 기획이라는 것을 안 건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손석희 앵커는 통학용 차비를 모아 전축을 구입했던 중학생 시절 처음 구입한 음반과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JTBC 뉴스룸’ 등 본인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끝내거나 시작할 때 소개했던 노래들을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줬다.
누구에게나 이런 노래들은 있다고 라디오를 들으며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경험한, 잊을 수 없던 순간과 시기에 자신을 위로해 주고 축하해주던 곡들 말이다. 그 노래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을 반추해 보는 것은 비단 손석희 앵커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노래로 끄집어내는 나의 인생 말이다.
나 역시 명징하게 어떤 순간을 기억하거나 누군가를 마음속에 담을 때는 언제나 노래가 함께했다. 대학 입학 후 그렇게 바라왔던 연극반 생활을 시작한 때를 떠올리면, 선배들 앞에서 치른 오디션과 그때 부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세상’이 소환된다.
좌충우돌 신입 기자 시절은 회식 후 한 선배가 노래방에서 불렀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배경음악으로 한다(회사가 정동에 있었다). 남편에게 연애 감정을 갖게 된 순간 역시 그가 불렀던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었을 때였다.
오십 넘은 지금까지 베프로 지내고 있는 친구의 얼굴은 그 애가 고등학교 때 울면서 부르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와 겹쳐 있으며(유재하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였다), 흔들렸던 나의 20대는 도어스(The Doors)의 ‘The Doors’ 음반 속 곡들과 함께했다.
엄마 아빠가 지금 내 나이쯤이었을 때 애창곡이라며 함께 부르셨던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송민도의 ‘나하나의 사랑’)는 앞으로도 두 분의 행복했던 모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등장할 것 같다. 이렇듯 노래는 힘이 세다.
인생의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을 담아낸 가사나 심장을 울리는 멜로디와 리듬을 만나게 될 때, 그때까지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던 그 시간은 특별한 색깔을 가지게 되고 의미가 더해진다.

마침 얼마 전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5명의 작가가 모여 인생에 녹아 있는 음악을 소재로 단편소설 모음집 <음악소설집>(프란츠)을 출간했다. 음악 전문 출판사에서 낸 소설집이라는 게 흥미로워 읽게 되었는데, 자장가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연결하고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노래를 끄집어내는 등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삶의 테두리를 확장시키는 음악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훗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유독 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평범한 일상에 덧입혀진 다채로운 음악이 그 순간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어떤 날이 음악과 함께 기억된다는 것은 그 순간이 우리에게 이야기로 남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남긴 소개 글처럼 말이다.
더위가 꺾이지 않은 늦여름의 고단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손석희 앵커가 라디오에서 전한 말처럼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와 함께했던 음악들, 위로가 되기도 했고 각별하게 그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는 그 음악들’을 나의 버전으로 구성해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스페셜 DJ가 되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