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여론의 압박에 몰린 아가멤논의 딸의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오페라로 만나는 '이피게네이아'
이피게네이아의 비극처럼 가족 간의 괴로운 갈등을 표현한 이야기는 드뭅니다.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작품인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지도자 아가멤논은 극심한 곤경에 처합니다.
트로이를 정벌하기 위해 총집결한 그리스 함대가 여신 아르테미스의 훼방으로 인해 바다에 강풍이 불어 꼼짝 못 하지요. 제사장이 여신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예언을 전합니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사랑하는 딸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군을 총지휘하는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를 아가멤논이 거부하자 연합군은 그를 압박합니다. 점차 탄핵 위기로 몰아가지요. 궁지에 몰리자 결국 그는 거짓 결혼식을 꾸며 딸에게 함대 집결지(아울리스)로 오라고 호출합니다.
딸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아울리스에 온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충격에 빠졌지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피게네이아의 거짓 결혼 상대가 된 아킬레우스에게 딸의 구명을 호소합니다. 사연을 듣자 매사에 거침없던 아킬레우스는 억울한 희생을 막으려 나서지요. 하지만 여론의 엄중함을 알게 된 그도 자신의 뜻을 꺾습니다.
아가멤논의 곤경은 지도자로서 떠안아야 할 고통의 구체화입니다. 개인의 사랑과 공적 의무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는 그의 결정은 야망이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권력을 누리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니까요!

이탈리아 화가 티에폴로의 위 그림은 이 고통스런 선택의 순간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대각선 구도가 역동적이며, 빨간색과 금색을 활용하여 강렬한 느낌을 주지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딸을 아버지는 애써 외면하며 신의 자비를 바라는 모습으로 그려 신화의 서사를 강조합니다. 왼쪽에 사슴으로 상징되는 여신의 구원이 이피게네이아에게 다가오고 있어 다소 마음이 놓이네요.
글룩의 오페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 풍부한 음악을 더했습니다. 이 오페라는 캐릭터들의 감정적, 심리적 갈등을 깊이 파고들며 그들의 내면의 혼란을 포착한 음악을 선보이지요. 2막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리아 ‘잔인한 아버지가 이 아이에게’는 그녀의 절망과 갈등을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애달픈 멜로디와 강력한 가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한 어머니의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지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리아 ‘잔인한 아버지가 이 아이에게’
이처럼 글룩의 오페라는 음악을 이용하여 청각의 깊이로 캐릭터를 살려냅니다. 가족을 희생해야만 하는 아가멤논의 아리아는 슬픔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고, 이피게네이아는 기쁨에서 절망으로 그리고 생사를 넘어선 영웅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아름답고 감동적인 아리아를 노래하지요. 그리스 군인과 사제를 대표하는 합창은 드라마에 강력한 집단의 목표 지향과 의무의 무게를 강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