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45년만의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공연
어두운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남자가 웃옷을 벗어젖힌 채 무릎을 꿇고 있다. 머리를 조아린 그의 한 손에는 성녀의 그림이 들렸다. 그의 굽은 등에는 밝은 빛이 비춘다.

사진을 보며 관객들은 모두 저마다의 느낌을 받지만 설명하기엔 다소 곤란할 것 같다. 바로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 공연 포스터를 보는 느낌이다. <탄호이저>는 바그너 오페라 중 가장 심플한 작품으로 꼽히기에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에게도 좋은 작품이라 평가된다.
지난 8일 오후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장에서 공연 연습을 참관하고, 연출을 맡은 요나 김(Yona Kim)을 만났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그는 슈만의 오페라 <Genoveva> 연출로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연출가'이기도 하다.
—먼저 직접 제시하신 포스터 이야기를 하자.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많다.
“포스터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고 들었다. 관객이 다양하게 무언가를 연상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충분히 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은 열려 있기에 나는 포스터를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기를 부여하려 했다.”

—귀하는 특히 바그너 오페라의 작품에 대해 혁신적이고 대담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탄호이저>에 대한 연출 콘셉트는 무엇인가?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특별히 강조하는 이슈가 있는가.
“작품 속 인물과 인물의 구도와 역학관계(Interaction)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베누스는 ‘팜므 파탈’, 엘리자베트는 ‘이타적 사랑’ 등으로 딱 잘라 정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연 때마다 나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무대에 객관화하여 풀어낸다. 재작년 대구에서 ‘링’ 시리즈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났을 때 바그너 원작에 대한 편견 때문에 오해나 실망할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유럽 관객보다 더 직관적으로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더라. 이곳 관객의 감각을 믿는다. 작품을 연출하는 행위는 경전이나 수학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어떤 형태(방식)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가.
“작품에 대해 바그너가 남긴 자료를 보고 해석하는데, 죄와 구원 같은 잣대로 원작을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구나 이 오페라의 배경은 중세의 독일이다. 현대인들이 원작의 형태에 대해 뭔 관심이 있겠나? 나의 작업 방식은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은 열린 것이고, 바그너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공연을 본 관객의 마음에 무언가 느낌이 남는다면 나는 만족한다. 정답은 없다.”

—등장인물 캐릭터나 오페라 주제를 무대장치나 의상디자인에 어떻게 조화롭게 표현하는가.
“극과 음악을 포함하여 무대장치와 의상, 조명이 중요한 요소인데, 중간 중간에 비디오를 적극 활용한다. 가수가 객석을 등지고 돌아설 때 영상이 실시간으로 그녀의 표정을 보여주는 식이다. 극 중 인물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야누스적인 모습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무대에 빔을 자연스레 세팅하거나 샤막(반투명 막, 조명에 따라 무대를 비추거나 가리는 막)도 활용한다.”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출 의도를 묻는 기자와 자신의 삶과 예술관에 따라 이 작품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려는 당찬 연출가와의 간극은 여전히 남았다.
오페라 연출가는 자기만족의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고, 작품을 통해서 관객과 부단히 소통하여야 한다. 이번 공연이 바그너의 광팬인 바그네리안, 구원 메시지를 기대하는 종교단체 관객과 함께 일반관객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된다.
바그너 음악의 초기작을 제대로 맛볼 기회가 모처럼 찾아왔다. 독자들도 오페라 <탄호이저>가 어떻게 무대에 펼쳐질지 상상하고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아가면 참 좋겠다. 2024.10.17(목)~20(일)일 평일 18:30 주말 15:0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