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쥘 마스네의 오페라 '돈키호테'
돈키호테의 시종이자 벗 산초의 꿈
서양 근대 문학의 대표작은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셰익스피어의 <햄릿>으로 의견이 모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지만 서로 상반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고전이지요.
그중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수십 개의 풍차를 보고 악당 무리라 생각하고 그들을 무찌르기 위해 돌진하지요. 맹렬하게 달려가 무섭게 찌르지만, 창은 회전하는 풍차에 끼어 부서지고 그는 말과 함께 내동댕이쳐집니다. 쥘 마스네의 오페라 <돈키호테>에서도 이 유명한 장면은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또,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항의하다가 되레 나무에 묶여 뭇매를 맞던 목동을 때리지 못하도록 목장주를 혼내 주지요. 하지만 돈키호테가 떠난 뒤 화가 난 목장주가 목동을 더욱 때리자, 이후에 다시 돈키호테를 만난 그 목동이 제발 아무 데나 끼어들지 말라며 그를 저주합니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엉뚱하고 험한 모험을 지치지 않고 계속합니다.

라만차 지방의 몬티엘 평원에서 모험을 시작한 돈키호테는 시에라 모레나의 산들을 걷고 스페인 동북부의 에브로강을 건너 지중해의 항구 바르셀로나에서 모험을 마쳤습니다. 그 붉은 열정의 모험을 함께 한 이는 오로지 시종인 산초 판사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태어날 때 하느님도 챙겨 주지 않고 비천하게 내버려두었다”며 슬퍼한 이였지요.
오페라 '돈키호테' 중 산초가 돈키호테를 추앙하는 아리아 '오 나의 주인님, 위대하신 이여!'. /유튜브
그런데 글도 모르는 농부인 산초가 통치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흠모한 공작이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약속했던 영지를 대신 주었거든요. 스페인 동북부 아라곤의 주도 사라고사를 관통하여 흐르는 에브로강에는 바라타리아(Barataria) 섬이 있는데, 바로 산초가 영주로서 통치한 섬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시종인 그에게 통치자의 품격에 대해 충심으로 세세히 조언하고, 산초는 누구보다 잘 해내리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영지를 다스리매 의외로 현명한 판단력을 발휘하지요. 송사를 처리할 때 솔로몬에 버금가는 지혜로운 판결을 함으로써 주민의 신망을 얻습니다. 먹거리 공급 시 중간 상인의 농간을 없애라는 둥 훌륭한 정책과 지침을 정했기에, 그가 남긴 '위대한 영주, 산초 판사의 법령집'은 그가 떠난 뒤에도 계속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나 원하던 영주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권력의 달콤함 만큼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미천한 출신인 산초가 왕관의 책무를 다하는 모습은 큰 교훈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장된 권력을 던져버린 그는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 듯한 자신의 상전인 돈키호테를 위대하다고 추앙하며 다시 고행길을 떠납니다.

현재, 산초의 영지인 바라타리아 섬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30여 분 더 시골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워낭 소리를 잘그랑거리며 길을 가로질러 가는 염소와 양 떼를 만나는 조그마한 동네를 이 잡듯 한참을 뒤져야 하지요.
한참을 동상을 찾아 헤매던 안내 기사는 멀리서 온 제게, 달랑 하나뿐인 산초 동상을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선정을 펼치려 고뇌하던 위대한 영주 산초는 그렇게 잊히고 있었습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소의 검열이 횡행한 시기를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웃으면서 읽다가 개혁 의지를 느낄 수 있도록 중세 기사를 소재로 글을 썼지요. 그래서 소설 <돈키호테>에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인본주의에 입각한 파격의 내용도 숨어 있습니다.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권력자들의 신성한 의무를 강조하고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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